- 용문산 상원사 범종 범종 주석 비율 13.8%로 나와 상원사종·성덕대왕신종과 비슷 일본鐘은 주석 비율 4~6%… 사학계 "용뉴 모양 달라 가짜 鐘"
- 최고 금속활자 논란 '증도가자' 탄소연대측정법 분석, 직지심경보다 100여년 앞서 학계 "글씨 먹 성분 조작 가능"
문화재의 위작(僞作)을 가리는 일은 역사학계의 중요한 작업이다. 진품이냐 위작이냐에 따라 역사 교과서 내용을 바꿔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최근 과학적 기법을 활용해 문화재 위작 여부를 가리는 작업이 몇 차례 있었다.
경기도 용문산에 있는 상원사 범종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직 과학적 기법이 정답을 내릴 순 없었다. 과학계는 "진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냈지만, 확답을 내리진 못했다. 역사학계는 과학이 내린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랜 역사 앞에서 과학도 명쾌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용문산 상원사 범종 논란
경기도 용문산에 있는 상원사 범종은 광복과 함께 국보 제367호로 지정됐다가 근대 일본에서 제작된 가짜 종이라는 위종설이 제기되면서 1962년 국보에서 해제됐다.
KIST 도정만 박사팀은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시료 일부를 채취해 화학 조성법으로 성분 분석을 했다. 화학 조성법은 시료를 구성하는 원소를 낱낱이 뜯어보는 방법이다. 분석 결과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주석 비율은 13.8%였다. 이 비율은 다른 신라시대 종인 오대산 상원사종(13.3%), 성덕대왕신종(13.2%)과 비슷했다. 하지만 서기 8세기에 각각 제작된 일본의 도다이지(東大寺) 종과 고후쿠지(興福寺) 종의 주석 함유 비율은 4~6% 정도였다.
도 박사팀은 상원사 범종의 제작 지역을 알기 위해 동위원소분석법도 사용했다. 동위원소는 화학적 특성은 같으나 핵의 질량이 다른 원소이다. 납에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합이 다양한 동위원소가 있다. 이 때문에 한국, 일본, 중국에서 채굴된 납의 동위원소 비율이 다 다르다. 동위원소 조성 비율을 알면 원산지 파악에 도움이 된다.
▲ 경기 용문산에 있는 상원사 범종. 상원사 범종은 국보였다가 일본에서 들여온 종이라는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여 1962년 국보에서 해제됐다. KIST 도정만 박사팀은 최근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시료를 분석한 결과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KIST 제공
Pb206은 양성자와 중성자 개수의 합이 206개인 납이다. 조사 결과, 성덕대왕신종과 용문산 상원사종보다 일본 종이 Pb208과 Pb207 비율이 10% 가까이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도 박사는 이런 결과를 근거로 "용문산 상원사 범종은 일본산이 아닌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하지만 역사학계는 이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납과 주석의 비율만으로 용문산 상원사 종을 통일신라 작품으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용문산 상원사 종의 용뉴(龍�·종 가장 위쪽에 있는 용의 모습을 한 고리)가 오대산 상원사종과 다른 점을 들어 위종설을 고수하고 있다.
◇최고(最古) 금속활자 논란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 인쇄본은 고려시대인 1377년에 제작된 직지심체요절이다. 그런데 2010년 서울 인사동의 한 미술관에서 공개된 증도가자(證道歌字)란 금속활자가 가장 오래된 것이란 주장이 제기됐다. 일부 교수도 같은 주장을 하면서 논란이 됐다.
▲ 용문산 상원사 범종이 통일신라 시대의 범종이 아니라는 증거로 용뉴(종 가장 위쪽에 있는 용의 모습을 한 고리)가 다르다는 점이 제시된다. 오대산 상원사 범종의 용뉴(사진 왼쪽)는 한 마리 용으로,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용뉴는 두 마리 용으로 구성됐다. /KIST 제공
진위 파악을 위해 그해 조사에 착수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증도가자의 제작연도를 측정하기 위해 탄소연대측정법을 사용했다. 탄소연대측정법은 탄소의 동위원소인 C14(양성자와 중성자 개수의 합이 14인 탄소) 비율을 측정해 연대를 추정하는 기술이다. 희귀한 C14의 비율이 낮을수록 오래된 유물이다.
탄소연대측정법의 단점은 탄소를 포함한 물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증도가자는 금속활자여서 탄소를 포함하지 않는다. 지질자원연구원은 증도가자에 묻어 있는 먹을 대상으로 탄소연대를 측정했다. 조사 대상 금속활자는 먹이 비교적 많이 묻은 '佛(불)' '悲(비)' 등 7개. 지질자원연구원의 연대 측정 결과 悲(비)자의 먹은 1210~1270년에 속할 확률이 68.2%, 1160~1280년에 속할 확률이 95.4%로 나타났다. 佛(불)자의 먹은 1030~1160년에 속할 확률이 68.2%, 1010~1210년에 속할 확률이 95.4%였다. 결국 먹의 측정 결과만 본다면 증도가자 제작 시기가 직지심체요절보다 100여년 이상 앞선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추론 역시 역사학계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금속활자 자체를 측정한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연대 측정이란 한계도 갖고 있다. 예컨대 고려시대의 먹을 구해서 증도가자에 고의적으로 발라 증도가자의 제작 시기를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