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궁궐 자취를 완전히 잃어버린 경희궁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된다. 경희궁은 서궐로 불리며 숙종 경종 영조 순조 등 여러 왕들이 머물렀고, 정조 헌종 등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했던 곳이다. [이충우 기자]
경희궁(慶熙宮)은 창덕궁을 흉궁(凶宮)이라고 꺼렸던 광해군이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定遠君)의 집을 뺏어 지었다. 왕기가 서려 있다는 말을 듣고서다. 그러나 정작 광해군 본인은 이 궁에 들지 못한 채 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왕위는 정원군의 아들, 인조에게 이어졌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궐(西闕)로도 불리면서 숙종, 경종, 영조, 순조 등 여러 왕들이 머물렀고, 정조, 헌종 등의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했던 경희궁은 그러나 일제강점기 궁궐의 자취를 완전히 잃어버린다.
조선왕실과 우리의 전통을 말살하기 위해 일제는 경희궁 내 건물을 헐어내거나 다른 곳으로 옮긴 뒤 일본인 학교와 각종 관사를 짓는 만행을 저질렀다. 중심부에는 거대한 방공호까지 팠다.
일제의 의해 철저하게 짓밟혔던 경희궁이 옛 모습 그대로 다시 지어진다. 경희궁은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미복원 상태로 남아 있다. 옛 경희궁터의 절반 이상은 성곡미술관 등 민간건물 및 주택이 들어서 있어 복원방식에 비상한 관심이 예상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경희궁 터를 소유하고 있는 서울시와 종로구청이 최근 `경희궁지 종합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해 제출했으며, 조만간 문화재위원회를 열어 이를 승인할 방침"이라고 27일 밝혔다. 매일경제가 기본계획을 단독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경희궁 터가 사적 271호로 지정돼 있어 복원작업에는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공동으로 참여하며, 예산도 국비 70%, 시비 30%를 투입한다.
사업 기간은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으로 잡혀 있다. 원래 경희궁터는 23만1000㎡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문화재보호구역 2705㎡를 포함해 서울시가 보유 중인 면적은 총 10만1201㎡이다.
가장 시급히 정비되는 것이 흥화문(興化門)이다. 일본인 절인 박문사(博文寺)의 문과 장충동 신라호텔 문으로 쓰였던 흥화문은 현재 경찰박물관 옆에 세워져 있다.
흥화문의 원래 위치는 구세군회관 건물 앞이다.
흥화문은 현판 글씨가 명필이었고, 글씨의 광채가 밤에도 훤히 빛났다고 한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발굴 조사를 해봐야 정확한 위치를 알겠지만, 필요에 따라 구세군회관을 매입하는 것도 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존하는 건물은 공식 의례와 조회를 하는 정전(正殿)인 숭정전(崇政殿)과 국왕이 국정 사무를 보는 편전인 자정전(資政殿)ㆍ영조 어진이 모셔진 태령전(泰寧殿) 일부가 고작이다.
자정전과 태령전은 전부 복원된다. 방공호 자리에 있던 융복전(隆福殿)과 회상전(會祥殿)도 원상 복구된다. 융복전은 국왕이 생활하던 대전(大殿)이며, 회상전은 왕비가 살던 중궁전(中宮殿)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방공호 역시 문화재인 만큼 보존하자는 주장도 나오지만, 경희궁지 안에 두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다수"라고 전했다. 광해군의 집무공간이던 흥정당(興政堂) 자리에 세워진 서울시립경희미술관도 철거된다.
이와 동시에 궁장(궁궐 담장)도 복구된다. 성곡미술관 주변에 일부 남아 있으며 구세군회관 쪽에서도 쌓아 이와 연결한다. 경희궁지의 정확한 경계도 조사한다.
일제강점기 지적도를 대조해 분석한 결과, 북쪽으로 성곡미술관, 서쪽으로 서울시교육청, 남쪽으로 새문안로 일대까지 경희궁지 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체 용지를 찾아야 하는 서울시역사박물관 이전과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궁지 내 민간건물 매입은 2단계에서 추진된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이를 포함해 10년 단위로 계획을 수립해 경희궁을 최대한 예전 모습대로 되살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사업비조차 결정되지 않은 상태지만, 일제가 훼손한 경희궁을 되살리는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한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