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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방화사건 재판될 뻔..방염처리 시급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구례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은 전통시대 단일 목조건축물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국보 67호인 이런 각황전에 대한 방화시도가 있었다는 소식이 5일 국립고궁박물관에 마련된 문화재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장에 전해졌다.

이 소식을 접한 문화재청 안전기준과 조성래 사무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말했다. 그만큼 아찔했다는 뜻이다.

문화재청을 비롯한 문화유산계에는 여전히 '숭례문 트라우마'가 크다. 자칫 이번 방화시도 사건은 그 재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국보이며 같은 목조건축물인 데다, 무엇보다 문화적 상징성이 그 어느 유산보다 크기 때문이다.

한데 더욱 공교롭게도 이 두 건축물이 방화시도의 대상이 됐다. 차이가 있다면 숭례문은 2008년 어처구니없는 홧김 방화에 속수무책으로 불에 타내린 반면 각황전은 미미한 피해를 보기는 했지만 그런 시도가 초기에 진압됨으로써 살아남았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각황전 방화시도 사건은 경찰의 추후 조사가 진행되면 동기와 방화방식 등이 밝혀지겠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이상할 정도로 그 방식이 닮아있다.

경찰이 확보한 각황전 CCTV 자료 등에 따르면 범인은 시너를 뿌리고는 신문지에 불을 붙여 방화를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방식은 사회에 대한 불만을 숭례문 방화로 풀고자 한 범인의 방식과 거의 똑같다.

그렇다면 각황전이 극적으로 화마에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초기 대응 등이 빨랐던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각황전이 방염처리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각황전을 불길에서 구해낸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각황전은 2008년 1월에 방염처리를 했다. 방염처리란 주로 목조문화재에 발화 혹은 착화를 막거나 지연시키는 약품을 뿌리는 일을 말한다.

조성래 사무관은 "각황전에는 다이메폭스Ⅲ라는 방염제를 써서 방염처리를 했다"고 말했다.

조 사무관은 "방염제가 항구적인 화재 방지 약품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이 방염제가 착화(불이 붙음)를 지연시킴으로써 화재나 방화를 초기 진화할 수 있으며, 이번 각황전 방화시도 또한 이 방염처리 덕에 큰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런 방염처리에도 문제는 없지 않다.

이날 국감에서도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지적했듯이 국보나 보물, 혹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중요목조문화재 400건 중에서도 방염처리가 된 것은 66.5%인 266건이며, 나머지 134건(33.5%)은 방염처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문방위 이우현 의원(새누리당)은 현재 복원 중인 숭례문 또한 방염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관련 예산도 부족한 실정이다.

문화재청은 "올해는 국비, 지방비 각각 4천만원씩 8천만원이 책정됐을 뿐"이라며 "하지만 내년에는 국비, 지방비 각각 4억원씩 총 8억원을 투입해 방염처리에 전력을 투구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방염제 처리는 단청 부분에는 백화 현상을 일으키는 등 부작용이 많아 이런 데는 처리를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조성래 사무관은 "다행히 최근 단청에 피해를 주지 않은 방염제를 개발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러 문화재 중에서도 목조문화재는 아무리 방염처리를 한다 해도 그것을 궁극적으로 화재나 방화에서 근원적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는 점에 커다란 고민이 있다.

이를 위해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거나 차단하는 방식의 대응조치가 취해지기도 한다.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 중요목조문화재에 대한 접근이 상당히 어려워진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화유산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식의 대응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평가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출신인 조유전 경기도박물관장은 "그렇다고 총을 든 군인을 문화재 주변에 배치할 수 없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무엇보다 문화유산에 대한 애호의식이 광범위하게 자리를 잡아 국민 모두가 문화재 파수꾼이 되며, 문화재청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관계 당국도 문화유산 보존에 대해 획기적으로 투자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했다.

taeshi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