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익기씨가 2008년 처음 언론에 공개한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 그는 이를 감춘 뒤 행방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대구시가 국보급 문화재인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 '유치'에 나섰다. 소유자에게서 해례본을 기탁받아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하겠다는 것이다.
김대권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13일 "해례본 보관자가 최근 이를 국립대구박물관에 맡겨 관리토록 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 조만간 그를 만나 기탁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그가 승낙할 경우 경북도와 협의를 거쳐 대구박물관에 전시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례본은 경북 상주시에 사는 배익기(49)씨가 가지고 있다. 배씨는 해례본을 상주의 골동품상인 조용훈(67)씨 가게에서 훔친 혐의(문화재보호법 위반)로 구속 기소됐지만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해례본을 둘러싸고 조씨와 민형사 소송을 벌이면서 이를 감춘 뒤 행방에 대해 함구했다. 이 과정에 조씨는 해례본을 국가(문화재청)에 기증했다. 무죄 선고 후 배씨는 해례본을 지역 주민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대구박물관에 기탁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대구시가 해례본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를 '문화 랜드마크'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시는 세계적인 추상화가로 파리와 도쿄에서 활동 중인 이우환의 미술관을 유치했고, 중구의 옛 KT & G 별관 창고를 리모델링해 대구예술발전소를 만드는 등 문화예술 기반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국제뮤지컬페스티벌과 국제오페라축제를 열어 공연산업도 키우고 있다. 문화산업이 21세기의 경쟁력 분야라고 판단해서다. 김 국장은 "해례본을 확보한다면 대구박물관과 함께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박물관도 기대감을 나타냈다. 배씨가 해례본을 기탁하면 특별전시실을 마련해 공개할 계획이다. 또 이와 관련한 학술대회도 여는 등 '해례본 마케팅'도 펼 방침이다. 함순섭 대구박물관장은 "해례본이 대구박물관에 전시된다면 학술·관광 측면에서 파급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기탁 여부다. 일부에선 민사소송에서 조씨가 소유권자로 판결이 난 만큼 이를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분석한다. 하지만 배씨 측은 어차피 조씨가 문화재청에 기증한 만큼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배씨는 해례본의 관리를 대구박물관에 위탁한 뒤 소유권을 되찾는 소송을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고검은 법원이 증인들의 증언을 배척하고 민사소송 결과에도 어긋난 판결을 했다며 11일 배씨 사건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훈민정음) 해설서로 조선 세종 28년(1446년) 발간됐다. 전체 33장의 목판본이며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와 의미·사용법 등을 담고 있다. 처음 발견된 해례본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돼 국보 70호로 지정됐으며 현재 서울 간송미술관(일명 '간송본')에 소장돼 있다. 배씨의 해례본은 간송미술관 소장의 훈민정음 해례본과 같은 판본으로 상주에서 발견돼 '상주본'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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