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최영창/문화부 차장
우리나라 풍속화의 대표적 유물로 전해지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단원풍속화첩’에 실린 25점의 장면과 ‘군선도’ 2점 등 총 27점의 그림 모두가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이 최근 미술사학계에서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국사교과서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선후기 사회를 설명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게 바로 ‘서당’ ‘씨름’ ‘무동’ 등 ‘단원풍속화첩’에 실린 그림들이란 점을 생각하면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주장이 새로운 것이 아니며 ‘위작(僞作) 시비’가 주기적으로 일어났다가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잠복한다는 점이다. 고미술품의 진위가 명확하게 가려질 수 없는 현실도 한몫을 하고 있다.
미술사학자인 강관식(회화) 한성대 교수는 지난 8일 열린 미술사학연구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풍속화는 김홍도의 친필 진적으로 보기 어렵고 단원과 긍재 김득신(1754∼1822) 이후 세대인 19세기 초 도화서 화원들이 그려 교본용 화보로 사용했던 그림이란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단원풍속화첩’의 문화재 지정명칭은 보물 제527호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金弘道筆 風俗圖 畵帖)’이며 ‘단원풍속도첩’으로도 불린다.
물론 강 교수의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1995년 발표한 논문에 이어 2008년 이동천 전 명지대 교수가 ‘진상(眞相)’이라는 책을 통해 ‘단원풍속화첩’에 실린 풍속화 25점 중 6점을 제외한 19점은 위작이란 주장을 발표한 직후 문화재위원회가 구성한 조사위원회에 참석해 같은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2008년 당시 이 전 교수는 ‘단원풍속화첩’뿐만 아니라, 보물 제585호 ‘퇴우이선생진적 (退尤二先生眞蹟)’에 실린 겸재 정선(1676∼1759)의 ‘계사정거도(溪舍靜居圖)’와 보물 제782호 ‘김홍도필 병진년 화첩 (金弘道筆 丙辰年 畵帖)’에 실린 단원의 산수화에 대해서도 문제를 삼았다.
단원의 그림은 물론, 정선의 ‘계사정거도’가 1000원권 지폐 뒷면 그림이란 점에서 파장이 적지 않자 당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소위원회를 구성해 조사를 벌였다. 소장기관의 자체 조사 결과 등을 보고받고 2010년 9월 소위원회와 다음달 문화재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검토대상 문화재 모두 보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므로 현 상태로 보물 지정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추사 김정희 등의 작품 등을 놓고도 위작 시비가 잦았지만 제대로 해결된 사례가 없었다. 당장 ‘단원풍속화첩’에 대한 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유물의 소장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들은 논리적으로 수긍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단원이나 추사면 이렇게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술론에 치중한 주장 대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성을 확보하고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지만 이도 결코 쉽지 않은 사안이다.
고미술품 위작 시비가 일어날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국가가 공인하는 고미술품 감정기관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국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시장에 맡겨놔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차피 과학적 감정이란 게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기존 문화재위원회와도 차별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미술사학에서 유물의 진위 구분은 당연한 책무이자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계의 견해가 날카롭게 대립할 경우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보물과 국보 등 국가지정문화재일 경우 더욱 그러하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소모적이고 진부한 진위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도 헤아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ycchoi@munhw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