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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문화재청서 사달라"

일제 때 도민 동원해 구축, 개인이 복원해 박물관 지어
日종교단체 매입의사 밝혀… 정부, 여론 들끓자 매입키로

46억 들였는데 2억7000만원?

문화재청 감정평가 결과 2억7000만원 밖에 안나와
박물관측 "헐값엔 못 팔아", 정부 "평가액 이상 못 줘"
또다시 日에 넘어갈 수도

일본 에 넘어갈 뻔했던 '제주 전쟁역사평화박물관 가마오름 일제 동굴 진지'의 정부 매입이 성사되기 어려워짐으로써 다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제주도로부터 매입 요청을 받은 문화재청이 토지 감정평가액 이상으로는 살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복원에만 20억원이 들어간 동굴 진지의 토지 감정평가액은 2억7000만원. 이에 따라 '일본으로의 매각이 다시 추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게다가 올해 초 박물관을 매입하겠다던 일본의 모 종교 단체는 지금도 매입 의사를 간접적으로 타진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조선일보]제주 전쟁역사평화박물관에 전시된 가마오름 일제 동굴 진지의 일부. 제주도민에게 굴을 파게 시키는 일본군의 모습이 재현돼 있다. / 이종현 객원기자

↑ [조선일보]동굴 진지를 직접 발굴하고 그 위에 박물관을 세운 이영근 관장. / 이종현 객원기자

정부가 가마오름 일제 동굴 진지를 사겠다고 밝힌 건 지난 3월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제주도민을 동원해 일제가 만든 땅굴이 일본인에게 팔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지역 여론은 들끓었다. 결국 제주도는 문화재청에 일제 동굴 진지와 평화 박물관을 매입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에 나서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2006년 등록문화재가 된 가마오름 동굴 진지만 매입하고 박물관은 살 수 없다고 했다. 현행 문화재 관리법상 개인이 세운 박물관을 매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박물관 측도 동의를 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문제는 최근 동굴 진지에 대한 감정 평가 결과가 나오면서 다시 불거졌다. 동굴 진지 부지 4800여평의 감정가액이 2억7000만원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도 "감정 금액이 예상보다도 너무 적게 나와 당황했다"고 했다. 동굴 복원에 약 20억, 박물관 건립에 26억원이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평가 금액이 이렇게 낮게 나온 것은 진지 동굴 안의 전시 시설에 대한 평가는 물론 진지 동굴이 갖는 문화재적 가치가 평가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평가를 의뢰받은 감정평가법인들은 "문화재의 화폐 가치는 계량화가 힘들다"며 진지 동굴에 대한 감정평가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제주도청 과 문화재청은 "현재 평가에서 빠진 진지 동굴 내의 시설에 대해서도 감정평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감정평가가 다시 이뤄지더라도 당장 매각이 성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화재청이 "공익적 가치 평가 반영은 비시장가치를 반영해달라는 것으로 부동산 매매에 유사 사례가 없다"며 반영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박물관 측이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에 의뢰해 평가받은 이 박물관의 공익적 가치는 약 250억원이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동굴 진지 내 시설에 대해 평가를 다시 해도 복원 비용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영근(59) 관장은 지난 1996년부터 사재를 털어 본인이 직접 진지 동굴을 발굴해 복원하고 박물관을 세웠다. 일제에 끌려가 강제 노역으로 가마오름 땅굴을 판 부친 때문이었다. 그는 강제 노역을 당했던 노인 200여명을 일일이 인터뷰하고 땅굴 발굴을 위해 일대의 땅을 통째로 샀다. 점심도 굴 안에서 도시락으로 때우며 굴 속의 흙을 파내고 버팀목을 다시 세웠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가며 일본군 군복과 물통 등 당시의 유물 2800여점도 모았다. 진지 동굴 복원 비용을 포함해 박물관 건립에 들어간 46억원은 중졸인 이 관장이 화물차 운전기사부터 시작해 번 돈과 은행빚이었다.

2004년 문을 연 박물관은 수학여행의 단골 코스가 됐고 일본인들까지 찾아왔지만 방문객이 줄며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다 지금의 사태까지 이어졌다. 차입금 이자만 현재 한 달에 50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박물관이 세워질 당시 설립자의 과잉 투자도 있었다고 보는 만큼 국가가 100% 보전해주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 평가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일반 부동산으로 보고 매입할 수밖에 없다"며 "박물관 건립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이를 모두 보전해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로부터 "박물관 측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사실상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도 나왔다. 이영근 관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정부가 할 일을 개인이 한 것도 과잉투자인가"라며 "주변에도 너무 큰 피해를 주고 있고 솔직히 너무 힘들다. 어디든 빨리 매각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제주 가마오름 동굴 진지

태평양전쟁 당시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가마오름 일대에 일제가 만든 지하 땅굴. 3층 구조에 길이 2㎞로 출입구만 33개, 사령관실·물자보관소·작전회의실 등 방이 수십개에 달한다.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제주도에 만든 땅굴 중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 | 곽래건 기자 |

日에 팔릴 뻔한 제주 일본軍 동굴 진지… 결국 日 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