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
아파메아 지역의 로마벽화, 불도저 동원해 통째로 떼가
왜 유적파괴 잇따르나 - 반군, 탱크 무력화하려고
골목 많은 구시가지서 교전… 정부군, 회당 등에 집중포화
시리아 내전의 장기화로 인해 수천년 된 시리아의 유적들도 수난을 당하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5일 고대 로마 벽화와 중세 십자군 성채 등 시리아의 문화유산 다수가 파괴되거나 약탈당할 위기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유적은 불도저를 동원한 도굴꾼에게 이미 약탈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바빌로니아부터 오스만튀르크 시대까지 나라 전체가 유적으로 가득한 '문명의 땅' 시리아에는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6점<지도>을 비롯해 수백점의 고대·중세 유적이 산적해 있다.
◇'문명의 땅' 위기에 처하다
인디펜던트는 내전 중 훼손된 것으로 알려진 11세기 십자군 유적 크라크 데 슈발리에성(城)의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이날 전했다. 중세 십자군전쟁 당시 이슬람 술탄 살라딘의 공격을 버텨낸 이 성은 지난 5월 정부군의 포격으로 성채 안쪽 일부가 파괴됐다. 여기에 반군 세력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성 안에 들어가 문화재를 약탈해갔다고 AFP 등이 전했다. 성은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영국군 장교 토머스 로렌스가 "십자군의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된 것"이라고 칭한 유적이다.
1~7세기 로마 유적이 많은 서부 아파메아의 피해도 막심하다. 치안이 약해진 틈을 타 도굴꾼들이 불도저를 동원해 신전 바닥에 깔린 로마시대 모자이크화(畵)를 떼갔다. 돌기둥 위에 서 있던 조각상까지 훔쳐갔다. 오아시스 도시 팔미라에는 유적들 틈에 정부군 탱크가 배치됐다. 정부군은 팔미라 로마 유물군(群) 지하에 참호를 파고 전투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한 시리아 고고학자는 정부군의 포격으로 인해 텔셰이크하마드의 고대 아시리아 사원이 파괴됐고 십자군 요새였던 알마디크성의 망루도 무너졌다고 증언했다.
◇인접국 시장에 장물 쏟아져
유적 훼손과 약탈이 빈발하는 것은 유독 시가전이 많은 시리아 내전의 특징과 맞물린다. 정부군에 비해 화력이 떨어지는 반군은 정부군 탱크와 헬리콥터를 무력화하기 위해 골목이 좁은 구시가에서 교전을 선호한다. 정부군도 구시가에서 가장 큰 회당이나 성채를 거점 삼아 반군에 포화를 퍼붓는다. 유적지가 많은 구시가에서 충돌이 자주 빚어지는 것이다. 고도(古都) 다마스쿠스와 알레포에서도 주요 교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구시가를 중심으로 벌어져 유적들이 다수 훼손됐을 것이라고 BBC 등 외신은 분석했다. 또 다른 유네스코 유산인 북부 고대 마을군에서도 시가전이 발생해 피해가 예상된다.
시리아가 자리한 레반트(Levant) 땅은 고대 바빌로니아부터 아시리아, 페르시아, 로마, 십자군 등 수많은 문명이 거쳐 가며 흔적을 남긴 곳이다. 2003년 이라크전쟁 중 벌어진 바그다드 박물관 약탈사건 조사단에 참여했던 레바논 고고학자 조앤 파르차흐는 현 시리아의 상황을 이라크와 비교하며 "절망적"이라고 표현했다. 파르차흐는 "터키와 요르단의 장물시장에 최근 들어 시리아 유물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며 "정부군·반군 할 것 없이 유물을 노린다"고 말했다.
[박승혁 기자 patrick@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