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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중국 업성 유적에서 발굴된 반가사유상,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83호), 일본 고류지(廣隆寺) 목조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1호). 이번에 업성 유적에서 발견된 반가사유상은 6세기 동아시아 불교미술 교류사를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업성고고대 제공·경향신문 자료사진

ㆍ중국, 10월에 첫 공개… 최다 불상 복원, 반가사유상 많아

지난 1월 중국 육조(六朝)시대 주요 도읍지 가운데 하나인 허베이(河北)성 린장(臨 )현 업성( 城) 유적에서 중국 발굴 역사상 가장 많은 불상이 출토됐다. 유물번호를 부여한 유물이 2895건이며, 이밖에도 수천개의 소형 파편이 수습돼 전체 유물 수량은 3000건에 달한다. 이는 6세기 동아시아 불교조각사를 새로 써야 할 만큼 대단히 많은 규모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불상은 대부분 하얀 대리석으로 제작됐으며 화려한 금박과 홍색·녹색의 채색이 선명하게 잘 보존된 것이 많았다. 게다가 명문(銘文)이 있어 제작 연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불상도 100여점이나 돼 중국 국내외 학자들의 큰 주목을 끌고 있다. 특히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다수 발굴됨으로써 고구려·백제·신라와 중국의 교류사를 규명하고 한반도의 반가사유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업성은 1800년 전 영웅호걸들이 천하통일을 놓고 격돌했던 삼국지의 무대 중 하나다. 조조(曹操)가 원소(袁紹)와 관도(官渡) 전쟁 이후 웅거했던 곳으로 이후 아들 조비(曹丕)가 이곳을 도읍지로 조위를 건국했다. 그 뒤에는 후조·염위·전연·동위·북제 등의 왕조가 이곳을 수도로 삼았다. 업성 유적이 있는 린장현은 현재 중국 역대 도성 가운데 유일하게 대도시가 들어서지 않은 곳이다. 1988년 중국이 ‘중점문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해 현재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2009년에는 불상 출토지 인근에서 조조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발견돼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업성 유적 발굴은 지난 1월10일 오전 6시에 시작됐다. 중국 최대 명절인 설날(春節)을 열흘 남짓 앞두고 허베이성 린장현 장허( 河) 강변의 모래사장에서는 곧 중국을 떠들썩하게 할 삽질이 한창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래 최다인 3000여건의 불상이 발굴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올리면 모래가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발굴이 매우 힘들었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한당연구실 주임으로 업성 전체 발굴을 지휘하고 있는 주옌스(朱岩石·51)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5m쯤 파들어 갔을까. 사람 크기의 불상 하나가 등을 드러내고 엎드려 있었다. 불상 아래 가로, 세로 길이가 대략 3.3m인 네모 구덩이가 드러났다. 깊이 1.5m인 구덩이에는 수많은 불상과 보살상이 가득 포개져 있었다. 대부분 파손된 채였다. 하지만 많은 불상에 화려한 금박과 채색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발굴 현장은 흥분과 긴장으로 술렁였다.

출토품의 중요성이 알려지자 현장엔 보호막이 급히 설치됐다. 유물의 안전을 위해 무장경찰이 증파됐다. 현장은 물론 주변까지 민간인의 접근이 금지됐다. 경찰 10여명이 소총으로 무장한 채 밤낮없이 현장을 지켰다. 발굴단의 규모도 확대됐다. 인근 은허(殷墟) 유적지인 안양(安陽)에 머물던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발굴단이 급히 업성 발굴현장에 합류했다.

그런데 시기가 별로 좋지 않았다. 곧 설 연휴가 시작돼 온 중국이 떠들썩할 판이었다. 결국 발굴단과 무장경찰은 설 연휴도 반납한 채 16일 만인 1월25일 마침내 발굴을 무사히 마쳤다. 발굴단은 유물을 조심조심 3중으로 포장했다. 현재 발굴 유물은 현지 무장경찰 부대 수장고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다.

복원 작업은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돼 현재 정리가 이뤄진 유물은 100여건이다.

누가, 언제, 그리고 왜 묻었는가. 중국에서는 불상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묻은 구덩이가 종종 발견됐다. 1953년에는 업성에서 멀지 않은 허베이성 취양(曲陽)현에서 2000건 정도의 하얀 대리석 불상이, 1996년에는 산둥(山東)성 칭저우(靑州) 용흥사(龍興寺) 터에서 400여점의 석불상이 출토됐다. 대량으로 매장된 불상들은 이번 발굴 불상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파손돼 두상과 몸체, 대좌 등이 각각 분리돼 묻혔다. 이는 중국 역사상 4차례에 걸쳐서 진행된 황제들의 불교 탄압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단은 발굴 초기에는 대부분의 불상이 6세기 동위·북제시대에 집중돼 있어 매장시기를 북제를 멸망시킨 북주의 무제(武帝)가 폐불(廢佛)정책을 펼 때로 추정했다. 그러나 소량이지만 당(唐)시대의 불상이 출토됨으로써 매장 시기가 수정돼 9세기 당의 폐불정책 때 매장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발굴단의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허리췬(何利群·40) 연구원은 “당의 불상이 매우 적은 데다 그나마 불상의 양식으로 미루어 폐불이 시행되던 시기보다 많이 앞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불상 정리가 완전히 이뤄진 뒤에야 구체적인 매장 시기와 원인 등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원로 고고학자인 중국사회과학원 양훙(楊泓·76) 교수는 “그간 업성의 불교 문화는 일부 석굴사원과 기록들로만 알 수 있었다”며 “이번에 유물이 다량으로 나와 업성이 동위·북제 시대 중국 북방의 불교문화 중심지임을 실물로 확인시켜주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두 그루의 수목이 둥글게 감(龕)을 만들고 그 안에 부처와 제자를 비롯해 7존을 봉안한 전형적인 북제 양식의 조각. 하얀 대리석으로 제작됐으며 금박과 녹색, 홍색, 검은색이 잘 남아 있다. | 업성고고대 제공

동위·북제는 고구려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사신 왕래가 잦았으며 고구려가 북제의 고승에게 불교의 역사를 자문했다. 백제와 신라도 북제에 사신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 중에는 반가사유상이 많아 우리나라 불교조각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수확이다. 6세기 중국에서 반가사유상이 가장 많이 제작된 왕조는 북제였다. 특히 우리나라 국보 83호는 북제의 반가사유상과 매우 흡사해 북제와 한반도 반가사유상의 연관성이 줄곧 거론돼 왔다. 그러나 정작 북제의 도성, 즉 중앙에서 발견된 반가사유상이 극소량에 불과해 북제 반가사유상의 실태를 전면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반가사유상의 한반도 전래에 대한 연구와 이해도 제한적이었다. 이번에 북제 수도에서 반가사유상이 다수 발견됨으로써 북제 반가사유상은 물론 한반도 반가사유상의 전면적인 연구와 이해가 가능하게 됐다. 아울러 6세기 한반도와 중국의 교류사를 규명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출토품 가운데 복원을 마친 유물들은 오는 10월 개관하는 업성박물관에서 전시된다. 박물관은 업성 출토 유물을 전시·보존하기 위해 6년간 준비한 끝에 완성됐다. 박물관 건축면적이 5228㎡, 정문은 고대 성문 형태의 21m 높이로 세워졌다.

※ 소현숙 교수는 지난 6월 업성고고대의 초청으로 유물 복원 현장을 방문한 뒤 이 글을 본지에 기고했다.

▲ 동위·북제

534년 중국의 북쪽에 웅거하던 북위(北魏)가 멸망한 후 동부에는 동위(東魏)가, 서부에는 서위(西魏) 왕조가 들어섰다. 두 왕조는 이어 북제(北齊)와 북주(北周)라는 이름으로 각각 계승됐다. 이후 북제는 북주에 멸망당하고, 북주를 계승한 수(隋)가 중국을 통일했다.

<베이징·린장 | 소현숙 원광대 역사교육과 초빙교수>

한반도 삼국시대 불상 닮은 중국 불상들 ‘세상 밖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