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으로 곱게 단장한 성모마리아가 색동저고리를 입은 아기예수를 안고 있다. 장우석의 1960년 작품 '성모자상'(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다. 이화여대는 7월말 까지 '모성'을 주제로 특별전시전을 연다. '모성전'에서는 20세기 초 작가미상 작품 '제석 할머니'부터 2005년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 속 '엄마'를 만날 수 있다. 이야기 하듯 연결된 작품 사이 긴장감 때문인지 천둥벌거숭이 학생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벌써 5만명 가까운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화여대 박물관 전시 모습

"대학에 박물관이 있다고?"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11년말 전국 박물관은 695관이고, 이 중 대학 박물관은 90관에 이른다. 결코 적은 수가 아니지만, 일반인들은 대학에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대학 박물관이 박물관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전시와 교육'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24일 대학가에 따르면 대다수 대학 박물관들은 전시와 교육은커녕 유물 보존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 때문이다.

고려대 박물관 담당 학예사는 "영세한 박물관들은 유물수가 부족하고 예산도 적어 기획전시를 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면서 "규모가 큰 박물관도 예산 지원보다는 발전 기금이나 관람객 기부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성균관대 박물관 안현식 학예사도 "학교는 문화교육적인 측면에서 박물관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지원해 주는 것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광부 조사에 따르면 연간 운영예산이 1억원 미만인 박물관은 공립 109관(37.7%), 사립 90관(35.9%)에 이른다. 대다수 영세 대학 박물관은 이보다 더 형편이 어렵다.

한국대학박물관협회 안성희 사무국장은 "학교가 연구 목적으로 발굴한 문화재라도 매장 유물은 문화재법에 따라 국가 소유로 귀속된다"면서 "학교가 보관하고 있는 국가 문화재만큼은 정부가 책임지고 예산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속유물은 보존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루가 된다"며 "전문 인력과 시설을 지원할 수 없다면 문화재 관리 기관에 보존을 의뢰할 수 있는 정도라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 국장은 정부 대학 평가에 '박물관 항목'이 들어가는 것도 운영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도서관처럼 대학 평가 지표에 반영된다면 학교가 박물관을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면서 "학교에 돈 잘 버는 기관만 살아남는다면 결국 박물관은 애물단지로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를 전했다.

이에 따라 문광부는 교육과학기술부와 연계해 대학의 박물관 설치 여부, 전문인력 배치 현황, 연구·전시 지원 등을 대학 평가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화여대 박물관 전경

이같은 상황에서 일부 대학은 박물관이 전시·교육의 장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곳도 있다. 이화여대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유물을 수집하고 관리만 하던 폐쇄성에서 벗어나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

이화여대 오진경 박물관장은 "작품을 수집하고 보관하는 보존기능도 중요하지만 유물을 통해 문화를 보여주고 외부와 소통하는 게 대학 박물관의 주요기능"이라고 설명했다. 교육기관에 속한 박물관은 '문화교육의 요람'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오 관장은 "치열하게 '기획'해야 한다"며 "재미없고 어려울 것 같은 작품을 입체적이고 시각적으로 구성하고, '어떤 화두의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로 시작해서 관람자의 입장에서 쉽게 풀어내야 한다"고 전시에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이어 "작품 설명이 교과서 같으면 유물을 보기도 전에 질려버린다"며 "심리적, 교육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전시는 나열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머니투데이 황보람기자 brid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