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중턱에 군 막사를 짓도록 허락한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이 민간(단체)과 군(軍) 사이에 벌써 몇 달째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런 갈등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위원회는 오불관언, 외면하고 있다. 얼마 전 만난 어느 위원은 그런 갈등은커녕 그렇게 결정한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런 위원회에 문화재보호의 '최후의 보루' 책임을 맡겼다니!!
문화재위원회는 올해 50주년을 맞아 "우리 역사와 문화 그리고 환경을 형성하는 모든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은 시대적·공간적·이념적·민족적 편견 없이 소중히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선언은 지금 북악산 허리에서 파괴되고 있는 문화유산과는 관계가 없다. 문화재위원회는 그동안 국가유산 보존에 크게 공헌했다. 경주 고도에 경륜장을 설치하겠다고 했을 때, 갖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경주를 지켜냈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은 어디로 가고 '공용건축물에 대한 특례'조항에 면책 핑계를 댄 채 북악산에 군 막사를 짓도록 상식 밖의 결정을 내렸는지 모르겠다.
지금의 형국은 당국이 훼손토록 방치한 문화재를 민간(단체)이 보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격이다.
문화재를 형질변경할 때에는 그럴 만한 중대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북악산 문화재의 경우, 군이 내세운 이유는 현재 군 막사 두 개를 하나로 통합하고 좀 더 안락한 휴식처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자녀들을 군문에 보낸 국민치고 누가 이를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문화재를 훼손하면서까지 그렇게 하는 것은 우선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없고 장병들도 긍지와 명예에 손상을 입게 될 것이다. 애초에 북악산에 축조된 두 개의 간이막사도 정당한 절차를 밟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북(백)악산에 군 막사를 지어서는 안되는 이유는 또 있다. 길 하나를 건너면 5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민가가 있다. 과연 이것이 군과 민 양자를 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군의 교범에는 이런 경우를 금지한 규정이 없는지 묻고 싶다. 아침저녁으로 구령과 함성을 들어야 할 이웃을 생각해 보았는가. 또 군부대가 민가 근처로 옮긴다면 최소한의 통과의례가 필요할 것이다. 여론조사와 환경영향평가, 지질검사 등도 실시했는지 묻고 싶다. 과문인지는 몰라도, 군 당국이 주민에게 알리기는커녕 지질타당성 조사를 했는지도 밝혀진 바 없다. 이게 과연 민주국가의 군이 취해야 할 기밀보호의 범주인가.
작년 여름 강남의 우면산 사태를 겪은 시민들은 그 사태의 원인규명이 분명히 밝혀졌다고 믿지 않는다. 군부대와의 관련성은 미스터리다. 북악산 산세는 험하고 가파른 바위가 늘어져 있다. 불규칙한 일기는 언제 그곳에 폭우를 부을 것인지 예측할 수 없다. 이미 속살을 드러낸 현장은 산사태마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집중 호우가 퍼붓는다면 흡수여과 장치를 없애 버린 막사는 삽시간에 휩쓸려져 자칫 장병의 생명을 위협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급류가 막사를 피해 하강한다면, 급류는 청운동 일대에 물벼락을 안길 것이 뻔하다. 왜 이런 우려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가.
서울시는 4대문을 둘러싸는 성곽과 그 주변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시설물을 정비하고 있다. 인왕산 계곡에 지었던 아파트들도 그 경관 유지를 위해 수백억원을 들여 철거하고 녹지공간으로 환원시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남산도 제 모습으로 복원시키겠다고 포부를 피력했다. 이런 일련의 전체적인 구도와 관련해서도 북(백)악산 군 막사는 조화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곧 철거될지도 모른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문화재위원회는 북(백)악산 군 막사 형질변경허가를 재심하는 절차를 서둘러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차제에 문화재훼손을 방관했다는 그간의 오명을 벗고 문화재 보존 기구로서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문화재위원회의 위상저락은 4대강 사업에서 보여준 무기력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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