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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축·용도변경 일사천리로

육의전 빌딩은 마침내 2010년 6월 관할 종로구청에서 준공허가를 받았다. 최초 지상 8층으로 허가받았으나, 준공 직전인 2010년 1월 '지상 9층을 허가해주면, 박물관 수장고·사무실 등 박물관 부속시설로 쓰겠다'며 문화재위원회에 증축 신청을 내 통과됐다.

그러나 이듬해 7월에는 '9층 대신, 지하 2층을 박물관 부속시설로 쓰겠다'며 종로구청의 용도변경허가를 다시 받아냈다. 9층에는 학원을 입주시켰다. 준공허가부터 증축과 용도변경에 이르기까지 건축주에 유리하게 행정 당국의 '협조'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육의전 박물관 개관은 빌딩 신축 2년이 다 돼가도록 감감무소식이다.

◇건축주의 버티기

건축주 이 대표와 박물관 건립위 실무를 맡은 황평우 소장은 관할 종로구청과 문화재청에 2010년 5월과 10월, 2011년 9월 등 박물관 개관일정을 바꿔가며 제시했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건축주의 자금난 등으로 건립이 늦춰진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문제는 건축주가 이미 준공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박물관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강제할 수단이 마땅하지 않다는 점이다. 매장문화재보호법 36조에 따르면, 건축주에 대해 사실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을 뿐이다.

◇육의전 빌딩 준공 허가 미스터리

육의전 빌딩 준공 허가 과정도 미스터리다. 종로구청 문화재담당 주임은 "건축주가 준공 검사 직전에 2010년 10월까지 박물관을 개관하겠다는 계획안을 제출해서 허가를 내줬다"고 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박물관을 짓겠다'는 각서만 받고 허가를 내주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문제는 또 있다. 2010년 6월 준공승인이 난 이 빌딩 건축물대장엔 박물관이 들어올 지하 1층이 '소매점' 용도로 기재됐다. 이영국 영동시티개발 이사는 "건축사 실수로 용도가 잘못 기재됐다"고 해명했다.

황평우 소장은 지난 4년간 육의전박물관 부관장 겸 행정정책실장을 맡아 문화재청과 종로구청에 증축과 용도변경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하는 등 건립을 주도했다. 황 소장은 4월 중순 "건축주가 의지가 없는 것 같다. 건축주 고발을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으나, 최근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마무리 짓겠다"고 했다. 이영길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박물관은 예정대로 개관할 것"이라면서도 "시기는 말할 수 없다"고 했고, 박물관 개관을 독촉하는 종로구청에 최근 "오는 8월 박물관을 열겠다"는 계획안을 제출했다.

본지가 지난 4월 초부터 취재에 들어가자 건물주는 4월 하순부터 건축물대장의 지하 1층 용도를 박물관으로 바꾸고, 중단했던 바닥과 벽 도장공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육의전박물관이 문을 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화재청은 8월까지 박물관이 들어서지 않으면 건축주를 고발하고, 종로구청의 인허가 절차를 감사하도록 서울시에 요청할 계획이다.

☞육의전

조선시대 비단, 면포, 명주, 종이 등의 주요 물품을 조정에 바치는 대신, 특정 상품에 대한 전매 특권을 보장받은 국가 공인 상점. 서울 종로를 중심으로 거리 양쪽에 자리 잡았다.

조선일보 | 김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