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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발표·토론자는 물론 청중까지 가세해 고함을 치며 서로 충돌한 광화문 현판 공청회. /이준헌 기자 heon@chosun.com |
문화재청 주최 현판문제 토론… 한자옹호·한글전용 싸움터로
주최측 여론수렴 의지 있었나
"유치한 소리 말고 본론이나 얘기해." "토론을 해주세요. 품평하지 말고." "시끄러!"
문화재청이 17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광화문 현판 공청회는 3시간30분 내내 고함과 박수, 막말과 인신공격으로 시끄러웠다. 이날 공청회는 2010년 광복절 때 복원된 광화문 현판이 석 달 만에 갈라지자 어떻게 다시 복원할지를 놓고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열렸다.
진태하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 이사장과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등 '한자옹호론'과 '한글전용론' 논객들이 나선 공청회는 시작부터 팽팽했다. 먼저 발표한 이대로 대표는 "'門化光'은 역사 속에 있는 죽은 현판이다. (한글)'광화문'은 오늘날 살아 있는 현판이고, 우리의 상징이고 자랑"이라며 한글 현판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뒤이어 진태하 이사장이 "동지 여러분, 광화문 현판을 바꾸는 것은 국기(國基)를 흔드는 것"이라며 시작하자 청중석에서 "동지는 뭐가 동지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라며 맞고함이 오갔다. 지팡이를 짚은 한 청중은 반대 주장을 하는 다른 청중에게 다가가 얼굴을 맞대고 싸울 듯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자가 겨우 장내를 정리하자 진 이사장은 "광화문은 새로 짓는 게 아니라 복원이므로 현판도 당연히 원래대로 한자로 써야 한다"고 했다.
종합 토론 진행을 맡은 박재묵 문화재청 갈등관리심의위원장이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목소리도 낮춰달라"고 주문한 것도 소용없었다. 지정 토론자 9명은 중립을 취한 1명을 빼곤 4명씩 각각 한글과 한자 현판을 쓰자는 논리를 주장했으나 금세 인신공격으로 치달았다. "모르면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지…." "표리부동한 사람" "스승의 등에 칼을 꽂다니…." 청중석에서도 "깡패 같은 소리 그만하라"는 고함이 이어졌다.
이날 공청회가 '막장'으로 치달은 데는 주최자인 문화재청의 책임이 크다. 광화문 현판 복원은 문화재에 쏠린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축제'로 이끌 수 있는 호재이다. 현판 글씨를 어떻게 쓸 것인지 구체적 모델을 제시하고 국민과 함께 고르는 재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발표자 선정부터 '한자옹호론'과 '한글전용론'이 필사적으로 겨루는 '어문정책' 대결장으로 만들어버렸다. '광화문 현판'이라는 구체적 문제는 제대로 접근조차 못 했다. "전기톱과 해머가 등장하는 국회를 보는 것 같다."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는 청중의 탄식이 오래 귓가에 울렸다.
[김기철 기자 kichul@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