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개항기를 기억하다
불평등조약에 따라 제물포항이 개항(1883)되고 조계(租界: 외국인의 자유로운 통상거주와 치외법권이 인정되던 구역)가 설정되는 등 역사적 상흔과 근대도시의 면모를 동시에 간직한 인천.
현재의 중구청 주변은 마치 근대로 시간을 옮겨놓은 듯 개항기 건축물들이 밀집되어 있다. 곧 짜장면 박물관으로 활용될 최고급 음식점이었던 공화춘과 일본영사관(현재 중구청), 제물포구락부,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대불호텔 터 등은 개항도시 인천이 지니는 역사성과 격동의 세월을 증명해 온 지 오래이다. 또한 건립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했을 은행(일본 제1은행, 일본18은행, 일본58은행 등의 인천지점)을 비롯하여 성당(답동성당과 내동성공회성당), 우체국, 상점 등 1883년부터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건립된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이 거대한 박물관을 이루고 있다.

주목받지 못한 개항장의 근대문화유산, 물류창고
인천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었던 제물포는 개항과 더불어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한 수도의 관문항으로 변모되어 갔다. 물류량이 증가하자 현재의 해안동 일대 갯벌을 매립하여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창고 건물들을 늘렸다. 현재 인천아트플랫폼의 주요 건물이 된 대한통운 창고(1948)가 대표적인 것이다. 한편 문화재로 등록된 ‘옛 일본우선주식회사舊 日本郵船株式會社 인천지점’ 건물은 당시 인천의 해운업을 독점했던 일본 굴지의 해운회사가 세운 것으로, 1915년 이후 건물의 주인이 몇 차례 바뀌었을 뿐 최근까지도 해운회사 사무실로 이용되었다. 이와는 달리 현재 몇 채 남아 있는 적벽돌의 창고들은 근대를 품고 있는 중요한 건축물임에도, 사람들의 관심과 손길이 머물지 않아 활용되지 않은 채 존재가치가 잊혀지고 있었다.

근대문화유산 활용의 지혜, 인천아트플랫폼
우리에게 근대의 시간을 가져다주는 인천 개항장 일대가 최근 문화공간으로 변모하였다. 근대를 담은 낡은 창고가 전시장과 공연장 등 문화시설이 되어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을 비롯하여 연접해 있던 삼우인쇄소(1902), 금마차다방(1943)과 물류창고 등 개항기부터 1930~40년대까지의 건축물 13개 동을 개축하여 인천아트플랫폼을 조성한 것이다.

이곳 건축물들의 내부는 현대적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토록 보수하여 창작스튜디오와 전시장·공연장·교육관·자료관을 만들었고, 작가들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작업실과 거주공간을 제공하는 레지던시(입주)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 체험 및 교육 과정도 마련하였고, 인천 근대문화유산 관련 아카이브(자료실)를 꾸며 2009년부터 시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근대건축물 본래의 외관을 최대한 유지함으로써 개항기의 문화적 맥락을 살리고자 하였고, 벽면 하나라도 원형대로 보존하여 문화재적 가치를 살려냈다는 것이다. 산업과 관련된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하여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문화유산 보존관리의 지혜를 보여 주는 복합문화공간, 인천아트플랫폼. 이곳에서 우리는 현대를 담은 근대를 만나고, 근대의 그릇에 담긴 오늘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