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정성이 맺힌 매듭의 꽃
‘매듭’하면 자연스럽게 노리개가 떠오른다. 고운 색깔 실로 이렇게 저렇게 엮인 것을 보노라면 그 정갈한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 없다. 노리개에 대한 첫 기억은 할머니의 다락에 닿아 있다. 수십 년 전, 혼인을 올렸을 적에 들고 왔을 손 때 묻은 노리개. 한 손에 살뜰히 잡히는 장식 아래로 곡선이 드리운 술은, 한없이 부드럽고 고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매듭을 엮는 손끝은 그 누구보다 단단히 여물어 있어야 한다. 매듭이라는 것이 단지 실을 엮어 내는 것뿐만 아니라 타래진 생사(生絲, 삶아서 익히지 아니한 명주실을 말한다)를 정련하여 부드러운 실로 만들고, 천연재료로 염색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아름다움을 꽃피우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고와 열정,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그 안에서 수많은 매듭이 탄생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은 현재 4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 매듭장 첫 보유자였던 할아버님(故 정연수)과 다음 대를 이은 할머님(故 최은순), 그리고 현재 매듭장 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는 박선경 전수교육조교의 어머니 정봉섭 보유자. 박선경 조교는 매듭의 역사를 몸으로 체득하고 마음으로 익힐 수 있었던 시간을 거쳐, 매듭의 가치를 성장시키고 있다.

“매듭 일이 워낙에 잔손을 많이 필요로 해서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하시는 일을 도왔어요. 지금도 생각나는 게,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밖에서 놀다가도 할아버지께서 이리 와 이것 좀 해라 하시면 쪼르르 달려가 실 색을 맞추는 심부름을 하곤 했어요.”

엮고 조이며 전통을 잇다
박선경 조교의 손끝에는 삶이 여물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매듭의 역사이며 전통의 가치를 일깨우는 당찬 손길이다. 가업家業으로 매듭 일을 자연스럽게 배우며 그 선택 또한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는 그녀다.

“매듭 일은 매듭 부분과 술 부분으로 나뉘어져요. 쓰임새에 따라 올을 모아 매듭할 끈목을 짜고 술은 연사(한 겹 또는?몇 겹을?겹쳐서?되게?꼬는?것)를 해서 술 비비는 틀에 감아 두 겹으로 꼬아서 술틀에 매어 수증기를 쐰 후 말리면 빳빳해지는데 이것을 가지고 봉술이나 딸기술 등을 만들죠.”

매듭은 결과물만 보면 그 과정이 단순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부분적인 과정이 굉장히 복잡하고 다양해 고도의 세심함을 요구한다. 그래서 매듭을 배울 때에는 주재료인 명주실을 다루는 것부터 배운다. 실이 너무 가늘어서 연사, 합사의 과정이 손에 모두 익은 다음에 엮고 조이는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매듭의 종류는 삼십여 가지예요. 도래매듭, 생쪽매듭, 양생쪽매듭, 국화매듭, 병아리매듭, 석씨매듭, 벌매듭, 장구매듭 등 다양하죠. 예전에는 매듭이 일상생활에 많이 쓰였어요. 노리개나 주머니끈, 도포끈 등 복식에 사용된 것 뿐 아니라, 상여나 가마, 악기나 검, 농악기 등에도 매듭유소가 달렸고, 또한 절에서도 매듭이 많이 쓰였어요.

” 과거 일상에 쓰이는 의기儀器와 기물器物에 아름다움이라는 장식효과를 더한 우리의 매듭. 故 정연수 보유자는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숨어서 일을 해야 했던 지난날. 급박하게 산업사회로 움직이던 격동의 사회상 속에서도 전통의 끈을 놓지 않고 대代를 이은 가업. 젊은 열정과 지긋한 연륜의 교집합이 있었기에 가능한 오늘의 매듭은 여전히 아름답게 빛난다.

곧고 바른 마음에서 비롯된 견고한 아름다움
“매듭은 나의 삶이며 내 인생의 소명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운명같은 거죠. 매순간 삶을 느끼게 해주는게 매듭이 주는 매력인 것 같아요. 실을 만지다보면 매일 하는 건데 안 될 때가 있어요. ‘어? 이거 왜 안 되지?’ 하다가도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하는 오기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때그때 그것을 극복하죠. 이런 감정, 느낌을 가지며 살 수 있는 건 평생 감사한 일이죠. 단순히 매듭을 만들어 결과물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삶과 연결시키는 부분에서 마음속으로 느끼는 부분이 많아요.

” 세상의 그 어떤 결과물도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은 게 없다. 마음이 곧고 예뻐야 결과물 또한 아름답다. 박선경 조교는 온 마음을 다해 정성을 기울이고, 바른 손길로 매듭을 엮어야 하는 이 일의 특성을 아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요즘에는 전통방식의 작품뿐만 아니라, 팬던트나 목걸이, 브로치 같은 것에 매듭을 접목해 만드는 작업도 많이 하고 있어요. 업業으로 하다 보니 내가 담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지만 수요자의 취향도 맞추는 거죠. 그래서 더욱 발전적인 매듭을 만들어나갈 수 있어요.

” 전통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속과 변화를 거듭하면서 발전해오던 것이 아니었던가. 박선경 조교는 전통방식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통과 현대를 적절히 접목시켜 시대적인 요구에 부흥하는 것도 매듭의 성장에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한다. 박선경 조교는 매듭에 끊임없이 물음을 던진다. 그것은 일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더욱 잘 해나가고자 하는 열정이 미래에 던지는 물음이다. 매듭장 정봉섭 보유자와 그의 딸 박선경 조교를 주축으로 온 가족이 매듭 일에 혼신을 다하고 있다. 매듭으로 똘똘 뭉친 가족의 힘이 바로 매듭의 역사와 가치를 지켜나가는 원동력이다.

글•박세란 사진•김병구

출처: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