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주민들조차 문화재를 구경하러 왔다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허탕치고 가는 경우가 많아요. 지난 추석 때 벌초를 싹 하고 갔는데 그새 잡초가 무성해졌네요."

지난해 약 800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 관광도시로 이름을 떨친 춘천시가 문화유산관리에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춘천시내에 위치한 일부 비지정 문화재들은 방문객들이 꾸준히 찾아옴에도 불구하고 안내문 설치 등 기본적인 관리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라 할지라도 대다수가 관광안내지도에 표시되지 않아 지역 문화재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안내판 하나 없이..' 방치된 비지정 문화재 = '탑이 마을 안쪽에 있다'하여 예로부터 '탑안골'로 불려온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창촌3리. 마을회관을 지나 경운기 한 대가 겨우 다닐만한 좁은 오솔길을 따라 서쪽으로 2㎞쯤 걷다 보면 화전(火田)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오래된 석탑을 만난다.

사각의 평석을 지대석으로 삼고 하층기단 면석의 사면마다 귀꽃을 음각으로 새긴 고려 중기의 석탑.

국내 석탑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창촌리석탑'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지정 문화재다.

울타리나 안내판도 없이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이 석탑은 산골짜기서 불어오는 삭풍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기울어져 있다.

탑의 지대석은 반쯤 밭에 파묻혀 있고, 각 개석(蓋石)은 그 끝이 대부분 마모돼 있으며, 삐뚤게 놓인 갑석 위로 지붕돌 중 하나는 거꾸로 놓여 있기까지 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채 방치된 석탑이 20여 년 전 쓰러지자 마을 주민들이 궁여지책으로 다시 쌓아올린 것이 그만 원형을 크게 훼손시킨 것.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오동철(52) 운영위원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고려 말 혹은 조선 초기의 석탑 양식과는 다른 독특한 양식을 띄고 있어 물어물어 찾아오시는 분들은 많은데 보존은커녕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춘천역사문화연구회에 따르면 창촌리석탑 처럼 방치돼 있는 비지정문화재가 지역 내에만 25점가량 된다.

◇도난문화재 78.9%가 '비지정'..도굴범들의 표적 = 문화재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도난된 문화재는 133건(3천794점)으로 이 가운데 105건(3천641점·78.9%)이 비지정 문화재다.

춘천시 서면 덕두원 봉덕사 뒷산에 위치한 비지정 문화재 '덕두원태실(胎室)'도 방치돼오다 10여 년 전 부지불식 간에 태함(胎函)을 도굴당한 경우다.

가파른 산기슭을 따라 허리 높이까지 자란 가시덤불을 손으로 헤집으며 겨우 정상에 다다라서도 잡초들 사이에 숨어있는 태실을 찾는데 한참이 걸렸다.

삼악산 끝 자락 야산 봉우리에 위치한 태실은 조선 선조 22년 왕손의 태를 묻은 곳으로 추정되는데 1997년 태실정비사업에 의해 울타리가 쳐진 이후 25년간 돌보는 이 없이 방치돼왔다.

비문 앞뒤로 마모가 심각해 글자를 거의 알아볼 수가 없고 주변에는 잡초가 무성해 일반인들이 찾아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현재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들 가운데 사적이나 지방기념물로 지정돼 국가의 체계적인 보호를 받는 경우는 10% 미만으로 추정된다.

비지정 문화재는 개인이나 사적 집단이 소유·관리하는 유적으로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정확한 감정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많아 훼손ㆍ도굴되지 않도록 보존을 선행해야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원도 문화예술과의 한 관계자는 "비지정 문화재들은 지정문화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자원들이기 때문에 마땅히 관심을 받아야 하지만 예산문제, 인력문제 등으로 인해 현실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방문객들이 꾸준히 찾아 오는 일부 비지정문화재에 한해서는 현지조사를 거친 후, 기초자치단체들과 협력해 안내판을 설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정문화재도 '오십보 백보' = 현재 춘천시에서 관리하는 지역 지정 문화재는 국보를 비롯해 지방유형문화재, 지방기념물 등 총 37점.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에도 제대로 된 관리를 받는 사례는 드물다.

춘천시를 북쪽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우두산에 위치한 조양루는 조선시대의 문루(門樓)로 1971년 '강원도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됐지만 관리소홀로 현재 팔작지붕과 기둥을 연결해놓은 철재 이음새의 부식이 심한 상태다.

일부 방문객들이 뾰족한 물건으로 나무 기둥에 새겨놓은 낙서는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우두산공원 측은 "조양루는 주로 큰 행사가 있을 때만 관리를 하고 있다"며 "낙서하는 방문객들을 일일이 잡아낼 수도 없어 관리하는 입장에서도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화재나 지역 문화박물관에 대한 홍보활동도 전무한 상태다.

춘천시가 펴낸 관광안내지도와 관광객들을 위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춘천45'에는 조양루는 물론 '강원도문화재자료 제131호'로 지정된 '충장공 한백록묘역'에 대한 정보도 누락돼 있어 외부인들은 위치 파악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또 조선시대부터 근대 한국농업의 변천사를 담은 춘천시 남산면 '녹생농가박물관'은 춘천시 농업기술센터가 관리하고 있지만 홍보 부족으로 현재 평범한 농가로 전락해버렸다.

녹색농가박물관은 2009년 6월 1일 개관, 짚으로 만든 전통 농업기구들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으로 한때 언론에 보도되면서 관광객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기도 했지만 현재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95개의 농경생활유물 대다수가 창고에 들어가 있다.

춘천시 관광과의 한 관계자는 "조양루, 한백록 묘역, 녹색농가박물관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해당 문화유산들의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 후 지도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등에 추가하겠다"고 설명했다.

 

(춘천=연합뉴스) 강은나래 기자ㆍ류명재 인턴기자 = r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