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애국가
스포츠 경기가 막 시작되기 전,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한 선수들이 보입니다. 긴장하는 사람은 이들들뿐만이 아닙니다. 홀로 애국가를 불러야 하는 가수의 얼굴을 불안과 결연함이 동시에 훑고 지나갑니다. 적막함이 가수의 얼굴에서 부서지기가 무섭게, 관중석을 가득 메운 경기장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잔잔한 파동이 선율을 타고 가슴 속으로 파고듭니다.
블로그 기자는 애국가를 들을 때 어떠한 장엄한 힘에 압도 당합니다. 그 힘을 애국심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가벼운 감정인 듯하고, 묘한 슬픔을 느끼게 하고 왠지 마음을 달아오르게 하는 복합적인 무언가로 생각하기엔 보다 무거운 감정인 듯합니다. 오늘은 지난 8월 등록된 문화재 「안익태 대한국애국가 자필악보」와 관련하여, 작곡가 안익태와 애국가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 흘리는 김연아 선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애국가를 제창하는 가수 김경호
출처: 오른쪽(Newsis) 왼쪽(SBS 방송 캡처 인터뷰 365)
#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애국가는 안익태 작곡 「대한국애국가」입니다. 지난 8월 등록된 문화재 역시 「안익태 대한국애국가 자필악보」이구요. 다만 이 곡이 최초의 애국가는 아닙니다.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하기 전에 민중들은 이미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입니다. 현재는 「작별」이란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익숙하시죠? 이 선율을 빌려 만든 곡이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가입니다. 1910년에는 애국가를 부르는 게 일절 금지되지만 1919년 3·1 운동 때 민중들이 부르면서 점차 보급되었습니다.
올드랭사인 선율을 빌려 불러진 애국가(사진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대한제국 애국가
이후 근대로 나아가기 위해 제도 개혁 의지가 있었던 고종 황제는 군대조직을 개편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서양식 군악대를 도입하고 지휘자로 독일 작곡가인 에케르트를 초빙하였습니다. (에케르트는 기미가요를 작곡한 음악가) 에케르트가 대한제국애국가를 작곡함으로써 새로 개편된 군악대는 서양악기로 연주하는 법을 익히고 5선보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02년 7월 1일, 고종은 「대한제국애국가」를 공식 반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 애국가 대신에 새로운 국가를 부른 다는 것은 민중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대한제국애국가」는 고음이 많아 음역대가 높거나 넓은 사람이 부르기엔 문제없었지만 일반 사람들이 부르기에는 분명 어려운 곡이었지요. 대한제국 시대가 끝나자 「대한제국애국가」는 그 의미를 상실했습니다.
국외에서 활동한 안익태가 쓴 곡이 국내로 들어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해방 이후에서야 가능했지요. 임시정부는 해방 이후 '한국애국가'라는 제목으로 안익태의 애국가 초판을 발행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미 북한만의 독자적인 애국가가 채택되었고, 남한에서도 역시 "비관적이다" 혹은 "익숙하지 않다"라는 이유로 국가(國歌) 제정은 계속 미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는 음악 교과서를 통해 점차 국민들에게 보급되었습니다. 게다가 한때 저작권자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던 유일한 국가였지만 2005년 저작권법 개정과 관련된 논쟁으로 정부가 안익태의 유족으로부터 저작권을 양도받게 되면서 저작권 논란은 잠재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작곡가 에케르트 (출처: 매일신문)
#안익태
1906년 평양에서 출생한 안익태는 평양보통학교와 숭실중학교에서 선교사를 통해 서양음악을 접했습니다. 중학교 때 들었던 서양 음악 수업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지요. 하지만 1919년 3.1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움직임에 동참한 이유로 강제 퇴학 처분을 받고 급기야 일본에서 공부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첼로 독주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도중 자신의 음악을 첼로 악기 연주에만 국한하지 않고 좀 더 적극적으로 음악을 직접 표현하고자 하는 신념으로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이후 빈과 베를린에서 지휘와 작곡 공부에 몰두하였지요. 그는 한국인 최초로 부다페스트, 런던, 파리에서 지휘자로 활동하였고, 작곡 활동을 왕성하게 펼쳐나갔습니다. 조국 해방을 염원하는 애국가를 포함한 <한국 환상곡>을 작곡하여 발표하였고, 이후 스페인 여성과 결혼하여 스페인에서 정착하며 마요르카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직을 약 10년에 걸쳐 맡았으며, 바르셀로나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안익태(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작사자 미상
작사자에 관해서는 뚜렷한 정보가 없습니다. 윤치호, 안창호, 민영환 등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지만 어느 것도 공인되지 않았습니다.
# 교향시 「한국환상곡」中 애국가
안익태 음악적 특징 중 두드러지는 점은 교향시가 많다는 점입니다. 교향시는 표제음악에 속합니다. 표제음악은 음 자체의 결합만을 표현하지 않고 음악을 통해 문학적이고 회화적인 내용이나 자연현상 등을 묘사하는 음악입니다. 안익태가 작곡한 곡 중 대표적으로 「한국환상곡」 이 있습니다.「한국환상곡」역시 교향시입니다. 제 5구조로 나뉘는데, 한국 역사를 집약적으로 들려줍니다. 제1주제와 제2주제에서는 우리나라 개국을 알리고 금수강산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연상케 합니다. 제3주제는 일제강점기, 제4주제는 해방 이후 동족상잔의 아픔, 마침내 제5주제에서 <애국가>의 합창이 울려 퍼지며 곡은 마무리됩니다.
# 등록문화재「안익태 대한국애국가 자필악보」
등록문화재 제476호로 등록된「안익태 대한국애국가 자필악보」는 관현악 총보(總譜)와 피아노 반주가 붙은 합창보 두 개로 총 4쪽에 기록한 악보입니다. 관현악 총보는 <大韓國愛國歌>라는 제목을 기재하고 모두 20마디를 총 3쪽에 사보하였습니다. 합창보는 <애국가>라는 제목과 성악 4성부 16마디를 1쪽에 기록하였습니다. 가사는 현행 <애국가>의 2절까지만 기록하였네요. 안익태의 유족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한 자료로 사보일자(1949.4.18.)가 기록된 대한민국 <애국가>의 자필 악보로서 사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안익태는 민족사적 흐름에서 볼 때 가장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살았습니다. 가장 어둡고 쓰라린 기간이었음에도 음악적으로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상황은 물론이고 새로운 분야에 홀로 뛰어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둘로 나뉩니다. 음악적 업적 위주의 평가가 있는가 하면, 또 누군가에게는 아주 냉정한 시선으로 평가받습니다. 최근 그가「만주 환상곡」을 작곡, 지휘하는 동영상이 발견되면서 친일 여부를 놓고 공방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프랑코 정부 독재 시절에 망명생활 하면서 끝까지 정부에 항거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 "첫 번째로 한 인간이고, 두 번째로 음악가입니다. 인간으로서의 나의 첫째 의무는 인류의 평화와 행복에 대한 것입니다"라고 말한 그처럼, 사람들은 음악가로서의 성취뿐만 아니라 당시 어두웠던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길 바랐던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입증할 만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삼방로95 독립기념관으로 가시면 「안익태 대한국애국가 자필악보」를 직접 보실 수 있습니다.
* 참고문헌 *
김윤희, 중학교 음악 교과와 사회교과의 통합학습 지도방안에 관한 연구 : 안익태의 「한국 환상곡」 감상을 중심으로, 2011
이지선, 애국가 형성과정 연구 : 올드랭사인애국가, 대한제국애국가, 안익태애국가, 2007
▲제3기 문화재청 블로그 기자단 이지영 기자
출처:문화재청 블로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