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뛰어놀던 주산 자락에는 왕들이 잠든 무덤이 있었습니다. 사적 제79호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으로 고령은 대가야의 옛 도읍지입니다. 어릴 때는 고분의 의미를 몰랐지만, 중학교에 가면서 이곳이 대가야의 무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항상 고향에 갈 때마다 주산에 올라 고분군에 오릅니다. 저는 그곳에 가면 대가야 왕들의 정기를 받는 듯 힘이 납니다.
고령에는 지산동 고분군을 비롯해 쾌빈리 고분군, 본관리 고분군, 고진리 고분군 등 총 40여곳의 고분군이 있고, 신라의 공격을 막기 위해 쌓아올린 주산성, 노고산성, 운라산성, 도진산성 등 10곳의 산성이 있습니다. 이 중 고령 주산성(사적 제61호)은 고령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9호) 쪽에서 주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지산동 고분군에서 보는 2011년 첫 해

지산동 고분군은 주산 언덕 위 경사면에 있는데, 대가야 최고 지배층이 집단으로 묻힌 곳으로 5세기를 전후한 시점부터 6세기 중반에 걸쳐 조성되었습니다. 대구에서 고령 쪽으로 넘어오는 고개인 금산재에서 보면 해가 떠서 가장 먼저 비치는 곳이 바로 지산동 고분 봉분입니다. 고분군에서는 해맞이도 하고, 주산 정상보다 고령 시가지가 더 잘 보입니다. 하늘 가까이에 가서 다시 태어나 나의 영토를 굽어보고 싶었던 대가야인들의 열망이 이곳에 무덤을 만든 것은 아닐까요?

사적 제79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

왕릉은 언덕을 넘어서도 이어집니다

오래전부터 외로이 고분군을 지키고 있었을 나무

옛 무덤이 수백기에 이르는데 봉분이 확실한 무덤은 72호까지 번호가 매겨 있습니다. 내부구조는 돌널무덤(석상묘) 돌덧널무덤(석곽묘), 돌방무덤(석실묘) 등 여러 형태가 나타납니다. 최대 고분인 지산동 47호분은 금림왕릉(錦林王陵)으로 전해지는데 국보 138호인 가야 금관을 비롯한 6,500여점의 유물이 이곳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대가야에는 순장의 풍습이 당시 있었는데 32, 34, 44, 45호분에서 순장의 흔적이 보입니다. 특히 44호분은 3개의 돌방과 32개의 돌덧널이 하나의 봉토아래 함께 마련되어 있습니다. 고분군 아래에는 지산동 44호 고분을 발굴당시 모습으로 재현한 왕릉전시관이 있습니다. 함께 순장된 '아빠와 딸'과 저승에서도 왕을 호위한 '무사' 등 순장된 사람들은 나이는 다르지만 저마다 슬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금림왕릉으로 추정되는 47호분

44호분을 본 뜬 왕릉전시관

대가야뿐만 아니라 아라가야, 금관가야에서도 순장의 흔적은 보입니다. 여러 가야국가 중 대가야 고분에서 금관과 금동관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대가야가 가장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것은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대가야는 도설지왕 때(562년) 신라 진흥왕이 보낸 이사부 장군 부대를 막아내지 못하고 패망하게 됩니다 . 고분군을 향해 오르는 길, 그날의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