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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00회 이상 발굴지도위원회에 참석해 수당을 챙겨간 후안무치한 고고학 교수들이 다시 문화재위원으로 위촉된 것은 어찌 된 영문입니까?”
연말에 책상 서랍 안을 정리하다가 눈에 띈 한통의 편지글은 이런 개탄으로 서두를 시작했다. 겉봉에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았다. 발굴 현장의 누군가가 보냈으리라 짐작되는 편지엔 ‘멘토’가 될 만한 선학들이 사라진 한국 고고학계의 현실이 담겨 있었다.
“지난 3월 감사원은 문화재청 감사에서 발굴지도위원회 실태를 조사해갔습니다. 감사가 용두사미로 끝난 것인가요? 4월말에 (새 문화재위원에) 위촉된 분들을 살펴보니 지도위원회에 수백회(매일 1~2회꼴) 참석해 최다 참석 횟수 1위를 하고 억대 수당을 챙겨간 ○○○위원을 비롯해, 최다 참석 랭킹 40위 안에 든다는 전문가들이 문화재위원(5인), 문화재전문위원(1인)으로 포함됐더군요.”
발굴지도위원회는 개발 사업에 앞서 진행되는 발굴 조사 결과에 대해 용역조사기관이 원로·중견 전문가를 초청해 현장을 보게 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다. 편지는 숱하게 열리는 지도위원회 참석을 싹쓸이하면서 쏠쏠한 수당을 챙겨온 일부 문화재위원들의 행태를 지적한 것이었다. 실제로 감사원이 공개한 지난 2~3월 감사 내용을 보면, 2007~2010년 4300여건 발굴 조사에 지도위원으로 참여한 593명(중복된 사람 포함) 가운데, 139명이 현직 문화재위원·전문위원이었다. 그들에게 준 자문수당만 18억여원. 원로 고고학자인 한 문화재위원은 4년간 654차례 나가 수당 1억9000여만원을 타갔다. 회당 수당이 30만원 정도이니 100회 참석이면 1년치 직장인 연봉 3000만원을 뽑는다. 수당은 발굴을 의뢰한 사업시행업자가 부담하므로, 과다하게 지도위에 참석하게 되면, 심의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업자 유착설 등 뒷말이 나오게 되어 있다. 학계 한 연구자는 “원로·중견학자들의 참석 수당 랭킹 1~40위 명단까지 떠돈다”며 “전문가의 지도위 참석은 연 10회 이내로 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사원 감사 결과 가운데는, 매장 분과 문화재위원 11명 가운데 7명이 발굴용역조사기관 이사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주의 조처한 사실도 나온다. 건설업체 눈치를 보는 조사기관 처지에서 위원들을 방패막이로 썼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될 법한 부분이다. 문화재위 매장분과위원들은 지난달 충북 충주 탑평리 유적에서 발굴된 삼국시대 주거지가 2013년 세계조정선수권대회 터라는 것을 의식해 이전 복원을 결정했다가 학계 반발이 일자 지난 23일 번복해 자질 논란을 자초하기도 했다.
고고학자는 땅을 파는 몸짓으로 시간을 성찰한다. 2011년 한국 고고학계의 선학들은 이런 인문학자의 품성 대신 업자의 능력을 따지는 후학들의 송년회 안줏감이 되고 있다. 개발업자들에게 문화재 지표조사를 건설용역처럼 덤핑 입찰해온 ‘발굴회사’ 직원들이 학계의 태반을 차지한 풍토에서 선배 학자들은 몸담은 학교나 조사기관의 발굴 수주 로비 등에 바쁘다. 현장의 후학 연구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업자일 뿐이지요. 선생님? 학자라고 부르지도 마세요.”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