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정릉6구역 재건축 '反삼성 확대'

반삼성 정서 확대 단초제공 서울 정릉6구역 재건축 사업장<제1탄>

지난 2011년 대한민국을 관통한 키워드는 ‘반(反)MB’ ‘반(反)재벌’ 정서로 압축된다. 태생적으로 부도덕하다고 혹평받는 MB정부의 ‘대기업 프렌들리(Friendly)’ 정책과 ‘탐욕적 재벌의 횡포’가 상호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반MB·반재벌 정서가 확대·재생산되어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최근 반삼성 정서를 확대시키는 단초를 제공하는 축소판으로 일컬어지며 홍역을 치르는 서울 정릉6구역 재건축 사업장을 찾아 그 실태를 알아봤다. ‘정릉 재건축 덫’에 빠진 삼성물산 삼성(삼성물산)이 시공사로 참여한 서울 성북구 정릉6구역 재건축 사업을 두고 이곳 주민들이 찬반 양론으로 갈라져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릉6 재건축 구역은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가 잠들어 있는 ‘정릉’ 바로 코앞에 위치하고 있다. 정릉은 조선왕조 최초의 왕릉이자, 고려시대 왕릉의 양식을 따라 축조돼 사료로서 보존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돼 왔다.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한국을 넘어 세계인이 가꾸고 보존해야 하는 인류공동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정릉이 개발논리에 밀려 아파트에 포위당하고 그 그림자 아래 가려지게 될 운명에 처한 것이다. 정릉6구역 재건축 사업과 관련 주민들 사이에서는 개발방식을 놓고 극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 세계유산인 조선왕릉.     ©브레이크뉴스 재건축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최대 15층 아파트 16개 동 710가구를 짓기로 하고 2009년 10월 재건축조합 설립인가를 받았다. 시공업체로는 삼성물산이 참여해 2010년 말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었다. 이에 대해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정릉을 사랑하는 모임(정사모)’을 만들어 재건축조합과 삼성물산의 개발방식에 강하게 반발했다. 정릉 바로 앞에 획일적인 콘크리트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고유한 풍광과 가치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던 것이다. 또 재건축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재건축을 하면 막대한 개발이익을 얻을 줄 알지만 실상은 과도한 분담금을 내야 되기 때문에 주민 대부분이 쫓겨날 가능성도 크다고 걱정하는 모습이다. 정릉6구역은 문화재보호구역과 접해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재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재건축조합은 이러한 사실조차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 재건축조합은 분담금이 3000만~4000만원 수준이라고 주장하며 재건축 동의를 받았다. 하지만 문화재청으로부터 현상변경 허가를 받기 위해 수차례 아파트의 최고 높이를 낮추는 과정에서 조합원 분담금이 1억~1억2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앞으로 분담금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는 형편이다. ▲ 정릉 6구역 예상조감도   ©브레이크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 모임인 정사모는 성북구청과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을 대상으로 조합 설립인가 무효소송을 제기하면서 주민들 간의 갈등이 법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2011년 10월21일 재건축조합의 설립이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삼성물산이 시공사로 참여한 정릉6구역 재건축 사업은 제동이 걸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조합이 주민 동의를 구할 때 연립주택과 아파트는 일반 단독주택과 달리 떼어서 동의율을 계산해야 하는데 묶어서 계산했다”며 “아파트 등을 떼어서 계산하면 정릉 제6구역 재건축 주민동의율이 법적 기준인 75%에 미달한다”며 조합설립 자체가 원천무효라고 판결했다.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이 같은 갈등과 혼선이 빚어지는 것은 서울시의 무분별한 재건축 구역 설정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서울시가 2008년 이 지역을 재건축 구역으로 설정하면서 아파트 건축이 불가능한 ‘제1종 일반주거지역 제한’을 해제했기 때문이다. 당시 주택 재건축 사업 정비구역 지정 신청서를 보면 이 지역의 제한해제 근거로 ①노후 불량 건축물의 점유율이 높고 ②토지 소유자가 대부분 영세빈곤 계층으로 상대적 소외감을 갖고 있으며 ③소방도로가 미확보 됐고 ④건축물 상당 부분 슬라브 철근이 노출됐고 벽체에 균열이 발생해 위험도가 높다는 등을 꼽았다. 하지만 정사모 등은 이러한 근거는 말도 안 되는 탁상행정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현장답사를 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재건축 희망자의 말만 듣고 일처리를 해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정사모 권영일 대표는 ①노후한 주택 몇 곳과 수리 보수가 필요한 다세대 주택이 일부 있지만 노후 불량 건축물이 많고 위험도가 높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고 ②이 구역 대부분 단독주택은 330㎡(100평) 내외로 정원도 잘 가꿔져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되며 ③도로도 넓고 대부분 관리가 잘돼 소방도로가 미확보 됐다는 것도 엉터리라고 반박했다. 정사모 권영일 대표는 “우리 선조에게 물려받은 아름다운 자산을 더 아름답게 개발하지는 못할망정 아파트로 친친 감싸는 게 후손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하고 “만약 재건축이 시행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해제되면 문화적·경제적 국익 손실이며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 대표는 재건축이 취소되지 않으면 헌법소원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도 강하게 피력했다. 유령조합(?) 문화유산 훼손 신청 ▲ 정릉     ©브레이크뉴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이에 앞서 “정릉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정릉의 역사·문화 환경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문화재 보호구역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를 4차례에 걸쳐 부결하거나 반려했다. 지난 4차(2011년 10월12일) 심의에서는 “문화재 경관에 맞게 전체적으로 경사지붕으로 하고, 100미터 밖 건물의 층고를 낮추라”며 설계변경 심의를 보류했다. 국가지정문화재의 경우 문화재 외곽 500미터 이내에서 공사를 하게 되면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한다. 더구나 서울은 100미터 이내일 때도 허가를 받도록 돼 있다. 조합은 이를 근거로 1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서는 고층 건물을 지어도 상관없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문화재위원회가 “100미터 밖 건물의 층고까지 낮추라”고 의결한 것이다. 재건축에 사활을 걸고 있는 조합은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에도 재건축을 포기하지 않은 채 “무슨 일이 있어도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 재건축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조합은 층수를 낮추는 등 설계 변경(안)을 4차례 제출한 데 이어 최근 다시 허가신청서를 냈다.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14일 조합 신청안을 심의할 계획이었으나 내년 1월 11일로 연기한 상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중대한 하자가 노출됐다. 인가가 무효로 판결된 유령조합(?)이 낸 신청서를 문화재청이 접수해 심의하겠다고 나선 꼴이 된 것이다. 정사모는 이에 대해 법적으로 확실한 결함이 있는 재건축조합의 현상변경 승인신청(안)은 당연히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사모는 문화재청에 제출한 ‘정릉주변(6구역) 재건축 현상변경 승인신청 건에 관한 의견서’에서 ①행정법원의 판결에 따라 재건축조합의 사업자 지위가 원천 무효임이 확인됐고 ②사업자인 조합이 사업에 필요한 상당수의 토지 매입을 할 수 없는 입장이며 ③조합이 고등법원(대법원)에 항소할 경우 확정판결에 따라 사업 자체가 취소될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만약 문화재청이 조합의 현상 변경안을 승인해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 대법원(고등법원) 확정판결에 따라 사업이 무산되더라도 주민들의 집은 이미 철거가 된 상태라 그 주민 피해가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주민들은 시공사인 삼성물산에 극도의 반감도 나타내고 있다. 삼성물산이 재건축조합과 ‘검은 커넥션’의 고리로 연결돼 배후에서 조정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이 과정에서 재건축조합에 40억원 이상의 뒷돈(?)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실은 주민비상대책위원회(재건축조합)가 주민들에게 배포한 유인물에서 “재건축이 불가해지면 삼성물산에 빌린 사업비 40억원을 돌려줘야 한다”는 주장에서 확인됐다. 또 삼성물산이 시공사로 선정되기 이전부터 재건축조합과 커넥션을 이뤄오다가 정사모로부터 삼성물산 직원이 업무방해죄로 고발된 사실까지 확인됐다. 또 정사모 권영일 대표는 “조합이 주민들에게 성북구 석관동 의릉 등 다른 문화재 주변 지역에서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낸 전문 용역업체를 고용해 반드시 문화재 심의와 사업시행 인가를 획득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며 “의릉 구역도 삼성물산이 시공해 삼성이 문화재 주변 재개발 전문업체라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2009년 세계문화유산인 종묘 앞에 55미터 고층 건물을 짓는 서울시 재개발사업안을 통과시킨 사례도 있다. 세계문화유산 ‘정릉의 수난’ 주민들이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재건축으로 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해제되는 것이다. 유네스코의 지정문화재 선정은 영구적이지 않아, 만약 문화재가 훼손되면 지정이 해제되기도 한다. 200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에 다리가 건축돼 역사적 가치와 경관이 훼손되자 2009년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되기도 했다. 게다가 2006년 유네스코 관계자는 “서울 도심 재개발 등으로 세계문화유산이 영향을 받으면 ‘위기 유산’으로 등재하거나 세계문화유산 목록 등재를 취소 하겠다”고 찍어서 경고한 바도 있다. 특히 정릉의 경우 문화재청이 ‘주변 묘역을 정리 하겠다’고 약속한 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기 때문에 해제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문화, 경제적 국익 손실뿐 아니라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정사모는 유네스코가 성북구청·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재청에 ‘정릉 훼손 방지’를 권고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영상물과 주민들이 연명한 탄원서도 제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는 상황이다. 또 정릉의 능찰로 함께 세워진 흥천사측도 재건축 계획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흥천사의 건립 목적은 정릉의 능찰로 신덕왕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정릉과 흥천사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다. 그런데 정릉과 흥천사 사이에 재건축조합의 계획대로 아파트가 들어서면 물리적·지형적으로 분할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흥천사가 정릉을 보호하기 위한 능찰이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세계문화유산인 정릉의 정체성 상실을 우려하고 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인공 건축물을 설치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된 독일 드레스덴 엘버 계곡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할 수도 있다”며 “이 일대는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를 지닌 1970년대 집단주택단지 ‘교수단지’도 있어 개발보다 보존과 리모델링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릉6구역 주민들은 이 지역이 획일적인 아파트촌이 아닌 보존가치가 있는 저층 주택지로 개발해야 한다는 대안도 내놓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휴먼타운’을 접목해 개발하는 방식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두꺼비하우징’ 방식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두꺼비하우징 사업은 낙후된 주거지를 전면 철거한 뒤 아파트를 신축하는 기존의 재개발 방식 대신 현재 살고 있는 집에 1000만~2000만원을 투자해 고쳐서 사는 방식을 말한다. 박 시장이 취임하면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출구전략으로 기존 주택을 개량하는 두꺼비하우징이 새로운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정릉6구역은 시공사가 선정됐고 사업이 상당 부분 진행돼 계획을 전면 수정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어 이래저래 진퇴양난의 어려움에 처한 형국이다. 조선 최초 왕릉 ‘정릉의 눈물’ 서울시 성북구 정릉2동에 위치한 정릉(사적 제2008호)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능이다. 신덕왕후는 사냥에 나선 이성계가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물을 청하자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 건넨 일화로 유명하다. 태조는 가장 사랑한 신덕왕후가 숨지자 도성 안인 정동(현 영국대사관 일대)에 정릉을 조성했다. 그러나 태종 9년 왕의 무덤이 모두 도성 밖에 있는데 정릉만이 도성 안에 있고, 무덤이 크고 넓다는 이유로 도성 밖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태종은 무덤을 옮긴 후 정자각을 없애고, 홍수에 의해 없어진 광통교를 다시 짓는데 정릉의 십이지신상 등 석물을 실어다 만들게 했다. 무덤을 옮긴 지 수백 년간 정릉은 왕후의 무덤이라기보다는 주인 없는 무덤에 불과했다. 자신의 아들을 태조의 후계자로 만들려던 신덕왕후의 과욕이 오히려 자식(이방석)을 죽음으로 몰았고 본인의 무덤마저 파헤쳐지고 옮겨지는 수모를 겪었던 것이다. 그 후 현종 10년(1669)에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정릉이 회복됐다. 정릉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고, 호석과 양석이 각 1쌍으로 줄어들고, 무석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왕후의 무덤에 비해 빈약하다는 평가도 받지만 조선왕조 최초로 만들어진 왕비의 무덤이다. 조선왕릉의 무덤 제도는 고려왕릉 제도를 기본으로 하고 약간 변화시켜 만든 것이다. 정릉의 사각명등석이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무덤인 현재 정릉의 것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 조선왕릉은 고려왕릉을 규범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희년 기자 heenyun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