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을 가슴으로 껴안은 남자
겨울이 찾아든 대전 뿌리공원의 평일은 아주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주차장을 빠져 나와 유등천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 얼마간 걸으니, 주말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열 맞춰 서 있는 오리배 틈으로 황의삼 씨가 우리를 부르며 손들어 인사한다. 꾸밈없고 친근한 인상, 그래서 더욱 ‘수달아빠’라는 호칭과 잘 맞아 떨어진다.

“처음 뿌리공원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1997년도였어요. 오리배 운영권을 얻어 영업을 시작하려고 분주히 돌아다녔지요. 그런데 보니까 유등천이 너무나 오염되어 있는 거예요. 오리배를 띄울 수도 없을 정도로 악취가 나서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원이길 바랐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청소를 했죠. 그런데 가장 큰 문제점이 유등천 상류에 위치한 축산농가에서 소, 돼지의 배설물을 무단 방류하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먹고 살기 급급한 때였으니, 자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을 어쩌겠어요. 그때 그 분들 마음 돌리려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지금은 축사에 배설물정화시설도 들여놨고, 많은 분들이 환경에 신경을 써주고 계세요.”

그렇게 온 정성을 쏟은 결과, 비로소 뿌리공원의 물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 공원에 수달 한 쌍이 찾아들었다. 수달은 천연기념물 제330호로 물이 맑은 곳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는 동물이다. 수달이 뿌리공원에 집을 짓고 산다는 것은 어쩌면 대전 하천의 희망을 알리는 어떤 기적일 수도 있었다.

“낚시가 취미인 터라 잡은 물고기를 오리배 선착장 아래 그물망에 넣어 놓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물고기가 사라지는 거예요. 그물망은 망가져 있고요.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며칠 유심히 들여다보니까, 수달이 훔쳐 먹었던 거죠. 유등천의 변화를 몸소 느끼고 수달부부까지 만나다보니, 이곳의 자연을 지금처럼만이라도 지켜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뿌리공원 주변을 청소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불법 낚시꾼이나 쓰레기를 하천에 폐기하려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연에 대한 인식을 바꾸다
뿌리공원에 들어와 오리배를 운영하며, 수달을 비롯하여 다른 천연기념물에도 사랑을 쏟은 지 벌써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애초에는 황의삼 씨의 영업장이랄 수 있는 유등천을 깨끗하고 맑게 하자는 취지였지만, 지금은 자연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인간이 있기에 자연이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하지만 그 인식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물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환경보호를 위해 많은 힘을 쏟아야 하는 거죠.”

황의삼 씨는 2007년, 천연기념물 보호감시원으로 위촉받았다. 쓰레기를 수거하고 천연기념물 구조와 보호활동을 함께 해 나가고 있다. 또한 4대 째 함께 공존하고 있는 수달부부 이야기를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강의활동도 한다. 이제 황의삼 씨는 수달아빠일 뿐만 아니라 천연기념물의 수호천사로, 아름다운 날개를 달았다.

“아유, 왜 이렇게 멸종위기동물들이 내 눈에 띄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게 묘한 인연인가봐요. 어느 날은 빌라 계단에서 길을 잃은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제328호)가 있어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또 어느 날은 다친 수리부엉이(천연기념물 제324-2호)를 발견해 치료 후 자연으로 돌려보냈어요. 정말 인연인가봐요.”

뿌리공원의 수달부부는 4대째 황의삼 씨와 그 인연을 나누고 있다. 황의삼 씨가 매일매일 소량의 먹이(미꾸라지)를 준다. 수달이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수달이 길들 만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하는 마음이 들지 모르겠으나, 황의삼 씨는 야생의 본능을 잃지 않을 만큼만 손을 내민다. 그 덕분에 수달은 유등천 뿐만 아니라 대전의 삼대하천에 터전을 만들어 개체수를 늘리고 있다.

황의삼 씨의 올곧은 마음은 자연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심 속의 공원이기에 놓치기 쉬운 자연 지키기, 황의삼 씨에게서 변화의 시작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함을 배운다.

글·박세란 사진·최재만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