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유물을 통해 문화를 알리다
우리나라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독일 박물관은 각각 성격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그 첫 번째가 유물의 미적 접근을 우선시하는 미술, 예술 박물관으로 쾰른의 동아시아 미술 박물관과 베를린의 아시아 예술 박물관 등을 들 수 있는데, 소장품으로 도자기류와 회화류가 주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하나는 유물을 하나의 문화적 산물로 보고 이를 통해 그 해당 문화를 재구성해 보고자 하는 성격이 강한 박물관으로, (앞에 언급한) 세계 민속학 박물관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드레스덴 세계 민속학 박물관은 1875년 작센 왕실의 고문 의학자인 아돌프 베른하르트 마이어(Adolf Bernhard Meyer)가 기존의 드레스덴 왕립 자연역사 박물관 내에 인류학부를 따로 분리시키면서 개관하게 되었다. 초창기의 연구 대상이었던 인도네시아, 오세아니아 지역의 유물 수집을 시작으로 박물관은 현재까지 인도, 중국, 일본, 이란, 시리아, 터키, 몽고, 티베트 등 아시아 여러 나라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에 이르기까지 세계 전역의 문화 유산 총 9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한국 유물은 약 6백여 점에 이른다.

박물관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특별전을 통해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밖에 한 달에 한 번씩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유물의 일부를 개방하여 담당 큐레이터가 직접 관객에게 소개하는 시간을 갖는 등 문화적 유물을 통한 타 문화 알리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문화재, 어떻게 독일로 흘러 갔나
우리 유물들이 독일에 유입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소위 ‘소멸위기에 처해 있는 세계 여러 종족들의 문화 산물’ 수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여행가, 상인, 외교관, 선교사, 학자 등이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이국적 물건들은 당시 유럽인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심지어 함부르크 등지에서는 전문적으로 이런 물품을 취급하는 상인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드레스덴 세계 민속학 박물관에 우리 유물들이 들어오게 된 경위도 이러한 시대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1888년부터 1896년까지 박물관에 처음으로 맡겨진 우리나라 유물은 주로 세계탐험 여행을 주업으로 하는 이들이 수집해 온 것으로 토기, 도자기류, 민속의상, 악기류, 부채, 화살통, 담뱃대, 반주합 등 92점의 일상생활용품이 그것이다.

1924년에는 함부르크의 큰 세계유물 전문회사인 움라우프(Umlauff)에서 78점의 문화재를 구입하게 되는데, 조선시대 두정갑옷과 투구를 비롯한 의복, 금속공예, 청자, 옻칠함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때까지 산발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박물관의 유물 수집 작업은 1930년 독일인 아시아 탐험가 발터 슈테츠너(Walther Stoetzner)의 제주도 민속유물 200여 점을 추가하면서 내용적으로 풍부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발터 슈테츠너(Walther Stoetzner)는 1927년부터 2년에 걸쳐 북중국의 소수 민족인 솔론족과 다후르족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현지조사를 수행하게 되는데, 이 때 우연히 우리나라에 관한 정보를 접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였던 1929년, 발터 슈테츠너가 한반도 땅을 밟을 당시 유럽에는 Korea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무당의 굿을 비롯하여 제사의식, 민간신앙 등이 이 이방인에 의해 관찰, 기록되었고, 농업, 어업 관련 각종 생업도구나 의식주 생활용품 등 대부분의 모든 문화적 유물이 이 때 수집되었다.

한편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8년과 1961년에는 제켄도르프(Seckendorf) 여사의 개인 소장품 30여 점을 박물관이 구입할 수 있었다. 제켄도르프 여사는 1882년부터 1885년까지 고종의 고문관으로 한국에 와 있었던 뮐렌도르프의 친딸로, 그녀의 소장품 중에는 뮐렌도르프가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 2점과 수복 글씨를 수놓은 병풍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85년에는 북한 정부의 청자, 옻칠제품 등 21점의 기증이 이어졌고, 현재까지 박물관의 수집작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옛 선조의 손길이 보여주는 조형미
이들 유물 중에서 흥미로운 문화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서울 근교 한 사찰 부근에 세워졌던 크기 4미터 70센티미터 거구의 목장승이다. 몸통에 ‘상원주장군’이라는 기문과 함께 을사년 오월이라고 날짜를 새겨 넣은 것으로 보아 1905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위압감을 줄 정도로 험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목구비는 과장되게 표현되어 오히려 절묘한 생동감을 주기도 한다. 우리나라 민중의 뛰어난 조형미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장승과 비슷한 신상을 북아시아 여러 종족들을 비롯하여 북미 인디언, 필리핀 등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북미 인디언 틀링기트족의 토템기둥의 경우도 유사한 영감을 던져주는데, 문화 비교 차원의 연구 작업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듯하다.

민속의상 중에는 조선시대 군복의 하나인 동달이, 전복, 전립 등이 특히 눈에 띈다. 동달이의 형태는 두루마기와 비슷하고 양 옆과 뒤 중심선이 트였으며, 색상은 주홍색의 몸판에 소매가 붉은색이다. 보통 무관이 동달이 위에 소매와 섶이 없고 양 옆과 뒤가 트인 흑갈색의 전복을 함께 입었다. 이 복식의 보관상태는 현재 매우 양호한 편이다. 전립은 짐승의 털로 만든 무관이 쓰는 모자이다. 공작 깃털의 장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품등이 높은 무관의 것으로 짐작되며 테의 양 옆에는 밀화로 된 매미모양의 장식품을 부착했다. 그밖에도 조선시대 여름철 옷에 땀이 배지 않도록 상의에 착용한 등나무 줄기로 만든 등거리, 등토시가 흥미롭다.

금속공예품으로는 별전과 황동연초합 등이 주목된다. 별전은 조선후기에 주로 열쇠패로 사용된 것으로 원형, 화형, 부채형, 실패형, 팔각형, 나비형 등의 별전을 이어 붙여 판을 만든 후 색색의 비단천으로 원형 문양의 별전을 엮어서 매달았다. 열쇠패와 별전에 희미하게 채색의 흔적이 남아 있고 비단천의 색깔이 화려한 것으로 보아 혼수품이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황동연초합은 담뱃잎을 담아서 보관하던 함으로 주로 조선시대 관리나 양반층에서 사용했다. 긴 직사각형의 육면체 모양으로 한쪽 측면의 고리를 이용해서 뚜껑을 여닫을 수 있게 제작되었다. 뚜껑 부분에 쌍희자문이 새겨져 있다. 보관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이다.

제주도 유물은 일상 생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로 농기구 17점과 어업도구 8점, 각종 연장 34점, 부엌 및 가사용품 84점, 의복, 신발 51점, 소와 말을 부리는 기구 7점, 장신구를 포함한 기타 유물 18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제주도에서 1960년대까지 평상복으로 많이 착용했던 갈옷을 비롯한 제주 허벅, 질그릇, 농부들이 일할 때 비, 바람, 햇빛을 가리기 위해 썼던 댕댕이 덩굴로 만든 정당벌립 등은 이 지방 특유의 문화산물이다. 특히 정당벌립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나막신, 짚신, 진신 등의 전통 신발 이외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고무신 공장에서 제조된 평양고무신도 섞여 있어 수집 당시 시대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신선한 호기심을 넘어 우리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본래 속해 있던 문화적 풍토에서 떠나올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우리 유물들이 이제 서서히 또 다른 문화 환경에서 그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다문화 사회가 비교적 일찍 시작되어 정착되어 가고 있는 독일에서는 타문화를 알기 위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독일에 있는 우리 유물들은 우리 문화를 알리고 그것들이 제대로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맨 처음 유럽인의 눈에 비친 우리 유물들은 먼 나라 동양의 낯선 것들에 대한 신선한 충격과 이질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제는 유럽인들에게 우리 유물이 이질감과 낯섦이 주는 신선한 호기심을 뛰어넘어 한국 문화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에 있는 우리 유물들을 온전히 보존하고 이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홍보 등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글ㆍ이정미 독일 드레스덴세계민속학박물관 연구원
사진ㆍMuseum fuer Voelkerkunde Dresden, Staatliche Ethnographische Sammlungen Sachsen, 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