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설 그날을 위해
우연과 필연이 뒤섞인 채 한 데 모여 있는 것이 인생이기에, 타이밍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단 한 번의 결정, 단 한 번의 만남이 우리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게 될 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 이다. 최우성 대표와 경기도 고양 경주김씨의정공파 영사정(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7호)의 만남도 그랬다.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우리는 복원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영사정 앞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영사정을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1월이었어요. 친구인 석비문화연구소 우종훈 소장이 먼저 제의를 해 왔지요. 그렇게 숙종의 장인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신도비를 답사하려고 함께 가게 됐는데, 그 옆에 낡은 기와집 한 채가 있었어요.” 보통 사람의 눈으로 영사정을 보았다면 이곳을 지키기 위한 400일의 여정은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터. 이것은 최우성 대표(한겨레건축사사무소)가 문화재수리기술자로서 오롯한 길을 걸어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사정은 숙종의 장인(경은부원군 김주신)이 직접 지은 건물로, 현재까지 본래의 건축수법이 그대로 유지되어 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국을 따져보더라도 보기 드문 곳이지요. 300년 전 한옥의 양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론 문중에서 약간씩의 보수공사를 하긴 했지만 그 원형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지요.” 이 집을 지은 사람이 왕비의 아버지라는 것만으로도 그 역사적 가치가 충분할뿐더러 300년 전 한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고택이야말로 절대로 원형을 잃어서는 안 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었던 것이다. “영사정은 제사(祭舍, 무덤 가까이에 묘제를 지내기 위하여 지어 놓은 집)로,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아버지인 김일진의 제사를 지내며 실제로 기거하기도 했던 곳입니다. 아버지를 기리는 아들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지는 곳이지요.” 이렇게 고유한 가치를 문화재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300년간 지켜진 원형이 허물어질 뻔했던 아찔한 이야기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건으로 회자되고, 이제는 당당히 경기도 문화재자료로서 보호받아, 복원계획을 탄탄히 세워나가고 있다.

가치를 되살리기 위한 애절한 편지
“참 영사정과 만난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문중에서 자체적으로 영사정을 복원하려고 이미 목재를 사놓고 일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거든요. 그 목재값만 해도 2억이 넘는 금액이었습니다. 저와의 인연이 있기 전에도 경주김씨 의정공파 종중회가 1990년부터 수차례 고양시에 문화재 지정을 신청했지만 반려 되었던 터라 더 기다릴 수 없었던 거죠.” 그렇게 영사정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400일의 여정이 시작됐다. 그 시간동안 최우성 대표와 경주김씨의정공파 종중회는 갖은 노력으로 달려왔다. 고양신문에 이에 대한 기고문을 싣고, 당시 문화재청장에게 탄원서를 내고, 전, 현직 문화재위원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등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일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아찔한 일을 겪기도 했지만 2010년 3월 23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7호로 지정받았다.

이날 이야기를 함께 나눴던 영사정 복원추진위원회 김순경 회장은 감회어린 얼굴빛으로 당시를 회고하며 앞으로 영사정이 맞게 될 미래를 가늠했다. 오로지 열정만 가지고 싸웠던 400일의 투쟁은 마치 역사의 기록물처럼 진중하고 애절하다. 경주김씨 의정공파 종중의 결단과 최우성 대표의 열정이 없었다면 결코 이러한 결과를 얻지 못했을 일.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기다리고 있는 영사정 앞에서 최우성 대표와 김순경 회장의 얼굴에는 안심과 뿌듯함이 진하게 어려 있었다.

글ㆍ박세란 사진ㆍ최재만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