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 군사들의 겨울 준비를 위해 인조는 몇 가지 옷을 내어주라 했다. 솜을 넣은 옷이야 겨울이면 응당 입는 것이니 익숙하지 않을 리 없고, 개가죽옷狗皮衣이라니 쉽사리 상상은 안 되나, 그마저도 ‘가죽과 털’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도 ‘갑절이나 추운 변방’이라 ‘측은’하다 해놓고 기껏 보내는 군사용품 목록에 종이옷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하고 또한 적절하다. 그리고 당시의 현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것은 매우 지혜롭고 현명한 처사였다.

남자의 핫바지에는 솜 열두 냥이 들어간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찬바람과 추위를 막기 위해 두툼하고 따뜻한 솜옷을 만들어 입었다. 솜을 두어 지은 옷을 흔히 ‘핫옷’이라 한다. ‘핫바지’도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핫옷을 만드는 솜에도 종류가 있다. 목화솜이 대표적이다. 조선 초기에 여러 차례 재배에 실패하다가 가까스로 성공한 후, 목화는 혹독한 겨울에 가장 절실한 품목으로 떠올랐다. 어떤 옷을 만들 때 솜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정량적’ 개념이 있을 정도였다. 예컨대 “남자의 핫바지 하나를 만드는 데 열두 냥이 든다”는 표현과 같이 말이다. 한 냥이 37.5g이니 열두 냥이면 450g이다. 이 정도로 핫바지를 만들었을 때 가장 좋은 무게감과 보온성을 가졌던 모양이다.

목화솜보다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사용된 것은 풀솜이었다. 풀솜은 실을 뽑아낼 수 없는 누에고치를 늘이고 잡아당겨 얻은 솜으로, 눈처럼 희다 해서 ‘설면자雪綿子’로 불렸다.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저자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는 설면자를 “서관 (西關: 평안남북도) 것이 좋으나 중국 것만은 못하다”고 평가했고 “무릎에 명주 보자기를 씌우고 차차 늘여 튀겨 떨어가며 맺혀서 단단한 것을 풀어 티와 마디를 없애고 켜서 결대로 잡아 피우면 고르고 보드라워지니 옷에 둘 적에 둘이서 서로 당기어 고르게 펴 두라”고 다루는 방법까지 기록해 두었다. 대쪽을 세 가닥으로 찢어 두들기면 금세 솜이 부풀어 오르지만, 그럼에도 곱고 정갈하기는 ‘손’으로 핀 것만 못하다는 아찔한 단서와 함께 말이다.

낙복지는 물론 쓸 만한 휴지와 장계까지 모두 들여보내라
솜옷 짓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옷감과 옷감 사이에 솜을 넣고 꿰매는 것이다. 그러나 무턱대고 솜만 넣어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솜이 옷감 안에서 뭉치고 아래로 처진다. 실로 듬성듬성 꿰매 고정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최적의 방안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여기에 종이가 활용되었다. 이것이 ‘낙복지(落幅紙, 남은 종이)’다.

낙복지를 대면 실로 촘촘하게 고정하지 않아도 솜이 미끄러지고 분리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데다 그 자체로 보온 효과가 배가되었다. 닥나무 섬유가 여러 갈래로 켜켜이 얽혀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주기 때문이다. 낙복지는 또한 솜을 둔 표면이 울퉁불퉁해지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해냈다. 종이에 솜을 두고 발로 꼭꼭 밟으면 오늘날의 압축솜과 같이 납작해지는데 그것을 옷감과 같이 마름질해 솜옷을 지으면 겨울 채비의 절반은 마친 셈이나 다름없었다.

인조가 변방의 군사들에게 주고자 한 ‘종이옷’의 실체도 낙복지와 관련이 있다. 솜을 구하기 어려울 때에는 옷감 사이에 종이를 넣어 꿰매 입었고 이것은 방한용품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극히 훌륭한 대안이 되었다. 정묘호란이 일어난 해인 1627년 9월, 인조는 군사들의 겨울 채비를 위해 다시금 솜옷 500벌과 더불어 낙복지 400장을 서북 변방에 보냈고 “해조該曹에 보관되어 있는 낙복지와 쓸 만한 휴지休紙, 회답이 없는 장계狀啓 등의 종이를 크건 작건 두껍건 얇건 논하지 말고 아울러 들여보내어” 그들의 추위를 구제하도록 했다. 이때의 일이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에 ‘유지의紙衣의 시초’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 잘못 옮겨 ‘누비’라고 한다
솜옷 짓는 방법 중 공들임이 지대한 것이 누비다. 누비는 옷감과 옷감 사이에 솜을 두고 밀리지 않도록 잡은 뒤, 실로 점선처럼 꿰매는 것이다. 솜 둔 옷감을 누비면, 안쪽에 넣은 솜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물론 바느질 선 사이사이의 골이 저마다 공기를 품은 터널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두껍지 않으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난, 얇고 따뜻한 방한복을 만들 수 있다. 조선시대의 궁중 문서인 『궁중발기宮中發記』의 물목에서는 오목누비•중누비•잔누비•납작누비와 같은 다양한 누비 방법을 찾아볼 수 있는데 잔누비는 솜을 얇게 두어 좁고 촘촘하게 바느질한 것이고 오목누비는 솜을 두껍게 둔 다음 넉넉하고 넓게 누벼 올록볼록하게 만든 것이다. 납작누비는 솜을 얇게 두고 넓게 누벼 솜을 둔 듯, 안 둔 듯 바느질한 것을 말한다. 정약용丁若鏞의 『아언각비 雅言覺非』에는 기워 꿰맨 옷을 일컫는 납의衲衣를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못 옮겨 누비縷緋라고 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 옷은 한 번 만들어 입은 후 빨래를 할 때 바느질한 부분을 모두 뜯고 다시 꿰매는데, 누비옷은 따뜻할 뿐만 아니라 빨래를 할 때에도 해체하거나 솜을 다시 꺼내어 부풀릴 필요가 없어서 대단히 편리하다. 줄지어 선 바늘땀과 간격 고른 폭, 포근한 솜으로 인해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누비는, 그래서 손목을 감싸는 작은 겨울용 토수吐手에도 여인들의 몸을 감싸는 저고리와 장옷에도 남자들의 바지에도 천차만별, 다종다양한 모습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비밀스러운 용도가 있다. 누비는 매혹적인 선물인 동시에 뇌물이기도 했다. 영조 36년에 평안병사 윤태연尹泰淵이 누비로 신발을 만들어 고위층에 선물했다는 이유로 파면 당한 사건에서 보이듯 말이다.

갖옷은 사치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하려는 것이다

왕 또한 아끼는 신하의 건강을 염려하고 공功을 치하하기 위해 갖옷을 하사했다. 세종이 장서각에서 잠든 신숙주 申叔舟에게 덮어준 돈피 갖옷, 효종孝宗이 52세 된 신하 송시열宋時烈에게 내린 초피 갖옷은 추운 겨울을 잘 이겨내라는 격려였고 그것은 곧 임금의 은혜를 상징했다. 효종이 승하한 후, 송시열은 차마 그 갖옷을 입지 못했고 훗날, 갖옷의 명주 안감을 빼내 죽은 뒤에 쓰라고 일러둔 채 모피만 온전히 두고 떠났다. 그렇게 송시열 초구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 갖옷은 실용이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치품이었다. 그리고 또 은혜이기도 했다.

글ㆍ조희진 복식칼럼니스트 사진ㆍ문화재청, 국립민속박물관, 연합콘텐츠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