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효종 북벌계획에 참여한 조선 중기의 이유태 선생
묘역 문화재 지정 앞두고 행정수도 개발부지에 포함.
묘역 가운데로 도로 나고 신도비는 물 구덩이 돼…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경세사상가 초려(草廬) 이유태(1607∼1684) 선생. 그는 인조 때 세자의 사부(師傅)를 지냈고, 이조참의·대사헌 등을 역임하며 국정 운영에 기여했다. 국정 개혁방안을 제시한 상소문 '기해봉사(己亥封事)'는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시무책(時務策)을 담은 것으로 율곡 이이의 경세학을 계승·발전시킨 것으로 학계에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과 더불어 효종의 북벌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이 한창인 충남 연기군 남면에 위치한 이유태 선생의 묘 앞 너른 들판에는 그의 평생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평지에 있던 신도비가 물속에 잠겼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유태 선생과 그 후손 등의 묘 4기로 구성된 묘역은 이유태 선생의 업적과 장묘사(葬墓史)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충청남도 문화재 신청 절차를 밟았다. 무난하게 인정될 것으로 보였던 묘역의 문화재 지정은 2004년 행정도시 건설을 위한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이 시행되며 무기한 연기됐다.
이유태 묘역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정수도 개발부지에 포함되자 전국의 유림 1만5000여명이 묘역 보존을 위한 서명에 참여했고, 청와대와 행정도시건설청 등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3월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는 이유태 묘역의 이장을 요청했다. 2008년 6월 이유태 묘역 4기의 묘가 충청남도 보존묘지(10·11·12·13호)로 지정됐지만 묘역 훼손은 계속됐다.
LH공사 측은 묘역 가운데로 도로를 냈고, 신도비가 위치한 구역에 신도비만을 제외하고 7m가량 성토(盛土)를 해 지대를 높였다. 주변 토지보다 도드라져 있던 신도비는 오히려 2~3m 깊이의 구덩이에 들어간 형국이 됐다. 움푹 파인 지형에 빗물이 빠지지 않자 신도비는 물에 잠겼고, 장마철에는 신도비가 거의 잠길 정도까지 물이 찼다. 이유태 선생의 후손인 이성우씨는 "사업시행자 측에서는 양수기로 고인 물을 뺀다고 했지만, 신도비는 계속 물에 잠겨있는 상태"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일제시대와 1960년대 두 차례 묘역 일대로 철도를 내려 했지만 묘역의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계획이 수정되기도 했는데, 지금 와 정부가 묘역을 훼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묘역이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행정도시건설청은 마땅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묘역을 지키려는 후손들과 사업시행자 간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기 때문. 세종시 건설예정지역 내 문화재 지정 업무는 2008년 행정도시건설청으로 이관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유태묘역의 문화재 지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건설청 김교년 문화재팀장은 "건설예정지역 내 이유태묘역을 포함해 모두 5개 묘역에 대한 문화재 지정 신청이 들어와 있는데, 형평성 문제로 5건을 함께 처리해야 해 결론을 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성우씨는 "후손들의 바람은 묘역 근처의 개발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을 살려 유적공원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문화재 지정으로 개발제한 등의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고의로 문화재 지정을 미루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장묘문화 전문가인 공주대 구중회 교수는 "이유태 묘역은 후대에 의해 보태지거나 변형된 것이 없이 조선중기의 묘제양식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어 보존가치가 높다"고 했다. 또 "봉분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신도비를 포함해 묘역 전체를 보존해야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며 "신도비가 물속에 오래 잠겨 있으면 풍화작용이 빨라져 훼손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충령 기자 chung@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