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앞에 시비…충주시 무허가 건립 묵인

탑평리 중앙탑 90m 앞에 혜자 스님 시 조형물 세워
문화재청 “법적 절차 안거쳐”…논란일자 철거 결정

국보 6호 충주 탑연리 7층석탑 앞에 설치된 시비. 한국문학평화포럼 등이 지난 22일 오후 시비를 설치한 뒤   문화 유산을 해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제공

국보 6호인 충북 충주 탑평리 7층석탑(중앙탑) 앞쪽에 충주시의 묵인 아래 무허가 시비가 들어서 물의를 빚고 있다.

한국문학평화포럼과 선묵 혜자 시비건립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중앙탑 공원 광장에 가로 4m, 높이 2.6m 규모의 시비를 세웠다. 시비는 선묵 혜자 스님이 쓴 ‘중앙탑에서’라는 시를 동천 임효림씨의 글씨로 제작했으며, 중앙탑 90m 앞쪽에 설치됐다. 31일 밤 중앙탑 공원을 찾았더니 중앙탑보다 시비가 먼저 눈에 들어 왔다.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탑평리 7층석탑은 우리나라의 중앙에 세워졌다는 뜻에서 중앙탑으로 불리고 있으며, 1962년 국보 지정 이후 외곽 경계 500m안(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은 건축물 설치 등에 규제가 따른다. 문화재보호법을 보면, 문화재 영향 사전 검토 구역인 이곳에 시설물을 설치하려면 ‘현상 변경 허가’를 받고, 문화재심의위원회 심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충주시는 이런 절차에 눈을 감았다.

이상조 충주시 관광시설 담당은 “시비의 내용이 중앙탑을 예찬하는 것이고, 시비가 국보 6호 중앙탑을 훼손하기 보다 홍보하는 성격을 띤 데다, 건축물이라기보다 조각 조형물이어서 공원 사용을 허락했다”고 말했다. 이선철 시 문화재담당도 “엄밀하게 법적 잣대를 들이대면 현상변경허가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중앙탑에서 90m정도 떨어졌고, 나무 뒤에 조그맣게 설치해 문제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제막 행사 계획서에는 충주시가 건립을 후원한 것으로 돼 있다”며 “충주시가 개인이 쓴 시비를 설치하는 데 눈을 감은 것을 넘어 주도한 것은 지역은 물론 나라의 자랑인 국보를 무시한 천박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김철용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주무관도 “시비를 건립하면서 충주시가 문화재청에 어떠한 문의나 통보를 하거나, 법적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며 “현장 조사를 한 뒤 문제가 있으면 시비 철거를 포함해 원상복구 조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비를 세운 이승철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은 “충주시와 협의를 해 시비를 세웠지만, 법적 절차 미이행 등의 논란이 있어 논의 끝에 철거하기로 결정했다”며 “중앙탑 근처에 조성되고 있는 조각공원 등 여러 곳을 후보지로 놓고 시비 설치를 다시 상의해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충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