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이전 문제로 천년고도 분열

이전부지 논란 재점화
동경주 "계획대로 와야"… 市 "도심이 더 적합해"… 한수원 "갈등 봉합돼야"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본사 이전지 선정을 두고 경북 경주가 분열되고 있다. 최근 최양식 경주시장이 "기존 예정지가 아닌 도심권으로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시와 주민, 주민과 주민 간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경주시가 주민들 간 합의도 되지 않은 내용을 성급히 발표해 논란만 부추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사 이전 흥정대상 아냐"

최양식 경주시장은 지난 6일 "한수원 본사를 경주 도심권인 배동지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작년 10월 "한수원 본사 이전에 따른 경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이전 예정지를 양북면 장항리에서 도심으로 변경하는것이 옳다"고 언급한 뒤 고심 끝에 내놓은 공식 입장이다.

 한수원 본사 이전 문제를 두고 경북 경주시 주민들 간 첨예한 대립이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방폐장 인근 양북면 장항리 일대로 본사 이전을 요구하는 동경주 주민들(사진 위)과 경주 도심으로 이전을 요구하는 일부 시민들이 각각 집회를 가진 모습. /경주시 제공

이에 따라, 경주시는 황남동 배동지구 녹색기업복합단지 내에 이전 부지 49만여㎡(15만평)를 확보하고 오는 2016년까지 본사 이전을 완료할 계획이다. 또 한수원 측에 입지추천 공문도 보낼 예정이다.

앞서 한수원 이전 예정지로 정해졌던 양북면 장항리 부지에선 현재 문화재 발굴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상황이 이렇자 양북면 주민 등 800여명은 지난 6일과 11일 잇따라 경주시청에 집결해 '한수원 본사 사수 및 방폐장 건설 중단' 등을 촉구하는 대규모 항의 집회를 가졌다.

양북면 등 동경주 주민으로 구성된 '한수원 본사 사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경주시장 독단으로 한 한수원 본사 이전 발표를 인정할 수 없으며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또 "장항리로 본사 이전이 결정된 것은 방폐장 안전을 위한 것이며 본사 이전은 흥정대상이 아니다"며 "정부와 경주시, 한수원 등은 약속대로 2014년까지 한수원 본사를 장항리에 건립하라"고 촉구했다.

해당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경주시는 양북·양남면, 감포읍 등 동경주 지역 3개 읍·면 주민들을 만나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다. 방폐장 특별지원금 1000억원 연내 배분, 원자력수출사업단지 조성(1500억), 국제원자력기능인력교육원 유치(1000억원) 등 오는 2018년까지 총 8600억원의 예산을 동경주 지역에 쏟아 붓는다는 것이다.

◆도심 주민 일제히 환영

반면 경주 도심권 시민들은 최 시장의 결정을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요즘 경주역과 시내 상가지역 등엔 '시장님 도심권 이전 결단을 환영합니다''도심권 이전으로 경주발전 앞당긴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현수막 수십개가 내걸려 있다. 주민 김모(47·황오동)씨는 "이번 최 시장의 결정은 지역의 고른 발전을 고려할 때 백번 옳은 결정"이라고 말했다.

지역 각 시민단체 등도 잇따라 한수원 본사 도심 이전을 지지하고 있다.

경주범시민단체연합은 지난 13일 노동동 봉황대에서 '한수원 본사 배동지구 재배치 범시민 환영대회'를 개최했다. 시민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시민단체 대표들은 "한수원 본사 도심권 이전을 방해하는 어떠한 세력도 단호히 배격하며, 이전 작업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경주지역 개인택시지부와 법인택시대표자 협의회, 전세버스협의회 대표자 등도 본사 도심 이전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수원, 전전긍긍

개별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부지 선정은 해당기관과 이전지역 지자체가 협의를 가진 뒤 정부의 최종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와 지역민 등의 의견이 대폭 반영되는 게 현실이다. 향후 공공기관이 추진할 각종 사업에서 이들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수원은 이전 부지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시와 주민, 주민과 주민 간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무게를 둘 경우 진행 중인 각종 사업에 제동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양북면 주민들은 "본사 이전이 안 될 경우 방폐장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수원 측은 "경주시가 양북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한 채 새 부지를 너무 빨리 발표한 감이 있다"며 "향후 경주시가 지역 주민들과 합의를 거쳐 본사의 새로운 이전 지역을 공식적으로 제시하면 국토부와 재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   최수호 기자 suh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