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시사풍자만화의 원형

근대 초기 만화는 미술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서구의 경우 18세기 영국의 풍자화를 시사만화의 원류로 보는데, 월리엄 호가드(William Hogarth), 토마스 로랜드슨(Thomas Rowlandson), 제임스 길레이(James Gillray) 등 초기 풍자화를 발표한 작가들은 대부분 화가들이었다. 석판화나 동판화로 제작된 이들의 작품은 미술관에 전시되거나, 아니면 신문에 발표되었다. 월리엄 호가드 <난봉꾼의 인생유전(Rake’s Progress)>(1735)처럼 연작으로 발표된 작품도 있었지만, 18세기 후반 활동한 토마스 로랜드슨이나 제임스 길레이의 작품은 1컷으로 정리되면서 우리가 보는 시사풍자만화의 원형이 되었다.

컷 속에 담긴 근대의 풍경

우리나라의 경우도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다. 한국 최초의 신문연재 만화는 1909년 6월 2일 창간된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의 <삽화揷畵>다. 이도영은 신문의 나아갈 바를 만화로 표현한 이 작품 이후 1910년 8월 31일 《대한민보》가 강제 폐간될 때까지 목판화 만화를 통해 당대의 현실을 풍자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1920년, 각각 3월 5일과 4월 1일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창간되며 한국만화에 새로운 변화가 불기 시작했다. 후발주자인 《동아일보》는 창간호에 김동성의 4칸 만화를 시작으로 <그림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1923년 5월 3일 사고를 통해 만화작품 공모를 시작했고, 5월 23일에는 당선작을 발표했다. 이후 《동아일보》는 독자투고만화란을 지속적으로 운영했다. 1924년 1월 1일 《조선일보》도 신춘만화공모작을 발표한다. 이처럼 1920년대에 접어들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독자투고 만화를 통해 이도영 만화에서 보여준 계몽과 풍자가 계승되었다.

이도영의 선구적 작업 이후 안석주, 김동성, 노수현, 이상범 등의 작업이 이어졌다. 근대만화 초기의 만화작가들은 화가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정기적 연재물이나 단발기고로 만화를 발표했고, 기사나 소설에 삽화를 그렸다.

안석주의 경우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까지 여러 매체에 ‘만문만화’라는 명칭을 붙여 긴 글과 한 컷의 그림이 합쳐진 형태의 만화를 발표했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긴 글에 삽입된 한 컷의 그림이라면 삽화가 분명하다. 하지만 만문만화의 그림은 그 안에 당대의 풍광은 물론 풍자와 유머를 담았다.

‘만문만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소견> 연작에는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손목에 시계를 차고, 전차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모던 걸과 세련된 모자를 쓰고 과장된 라인의 바지와 남성성을 강조하는 상의를 입고 있는 모던보이가 등장한다. 산책을 나온 모던보이들의 모습만 보자면 파리나 뉴욕, 하다못해 도쿄쯤 되어 보이지만 실상은 저 뒤로 단층 기와집과 초가집이 보인다. 그래서 세련된 코트를 입고 모자를 쓰고 하이힐을 신은 모던 걸이 판잣집에서 나온다. 샤넬 모자, 쇼윈도, 백화점, 우아한 라인의 코트와 하이힐까지. 패션은 최첨단을 달리고, 일상은 여유롭고 취향은 서구적이지만 결국 이들이 사는 곳은 식민지 조선이라는 말이다.

1929년 8월 25일자 <종로서 대대확장 이전>을 보면 점점 확장되어가는 종로경찰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주 작은 건물에서 시작해 급기야 1929년에는 비잔틴 돔을 자랑하는 거대한 르네상스식 건물로 변한다. 이러한 건축물이 등장한 시점은 1925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공된 이후로 꼽는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공될 쯤 전국의 주요 행정기관의 건축이 완성되었고, 식민지 자본주의가 안정되며 일본에서 진출한 자본에 의해 상업건축이 시작된 것이다.

1934년 5월 14일자 <폭로주의의 상매가>에서는 백화점이 나온다. 백화점이 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의 상점이 보이도록 건축되었고, 외부에는 보도블록이 깔려있다. 미쯔꼬시백화점(신세계 전신)은 1930년, 미나까이백화점은 1933년, 화신백화점은 1937년, 죠지아백화점(미도파 전신)은 1939년에 완공되었으니, 1934년이라면 미쯔꼬시 백화점이나 미나까이 백화점의 모습을 그린 만화다. 안석주는 만문만화를 통해 근대와 전근대의 충돌, 화려한 서구취향과 식민지의 충돌 등을 보여준다.

풍자와 함께 만화를 끌어간 중요한 요소는 유머다. 서구의 경우, 스위스 기숙학교의 교장이던 로돌프 퇴퍼(Rodolphe Topffer)는 그림과 글을 함께 보며 칸과 칸을 통해 이야기가 연결되는 형식을 정리해 1833년 첫 작품으로 허영심 많은 한량 이야기인 <자보씨 이야기(Histoire de M. Jabot)>를 펴냈다. 월리엄 호가드처럼 몇 장의 그림도 아니고, 한 페이지에 5개 내외의 칸으로 나뉘어져 이야기가 전달하는 현대적 형식의 만화가 완성된 것이다. 로돌프 퇴퍼는 1837년 <크레펭 씨(Monsieur Crepin)>, 1840년 <팡실 씨(Monsieur Pencil)>, 1845년 <알베르 이야기(Histoire d'Albert)>같은 책들을 연이어 출판했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이들 만화는 대부분 유머만화였다. 퇴퍼의 만화에서 보듯, 근대만화에서 유머는 캐릭터를 통해 정착되었다. 다시 말하면, 근대만화는 캐릭터의 유머를 통해 정착되었다. 웃음은 인류에게 있어 본능적 감정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근대만화는 유독 유머를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갔고, 유머는 캐릭터를 통해 구체화되었다.

이야기와 캐릭터의 결합으로 시대를 보여주다

근대만화 중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캐릭터 만화는 1924년 10월 13일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노수현의 네칸 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다. 김동성이 기획하고, 이상협이 이야기, 노수현이 그림을 맡은 거의 최초의 분업 만화인 <멍텅구리 헛물켜기>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예고 기사의 표현을 빌자면) ‘우습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당대 미국 신문의 코미디 만화를 한국에 적용해 경성의 모던보이들이 보여주는 허세, 말썽 등을 우습게 풀어냈다. 주인공 최멍텅과 윤바람은 작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멍청’하거나 ‘바람피는’ 모던보이들이다. 그리고 여자 주인공 신옥매는 미모의 기생이다. 모던보이와 기생의 조합은 식민지 근대의 서글픈 표정의 또 다른 모습이다. ‘멍텅구리 시리즈’는 ‘헛물켜기’를 시작으로 ‘련애생활(연애생활), 자작자급, 가뎐생활(가정생활), 세계일주’등으로 시리즈를 계속 이어나가 모두 192회나 연재되었다. 당시 반도키네마에서 영화로 제작되어 조선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한편, <멍텅구리>의 인기에 놀란 《동아일보》는 안석주의 <허풍선이 모험기담>을 1925년 1월 23일부터 연재하기 시작한다. 주인공 허풍선이 세계 일주를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으로 ‘세계여행’이라는 근대의 로망이 펼쳐진 작품이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했는지, 8월 17일부터 <멍텅구리>와 같은 형식(세로로 긴 4칸)을 채용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내세운 <엉터리>를 연재하며 <멍텅구리>의 인기에 맞불을 놓기도 했다. 이밖에 《시대일보》에서는 1925년 6월 30일부터 <구리귀신>(작가 미상)을 연재했고, 그 뒤를 이어 신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리아의 반생>을 연재했다.

식민지 시대 신문에 실린 만화는 크게 한 칸짜리 풍자만화이거나, 글과 함께 수록된 만문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나 <허풍선이 모험기담>과 같은 네 칸 만화이거나 신문 전면을  활용한 커다란 만화였다. 각각 형식이 다르고, 풍자냐 유머냐 지향하는 바도 다르지만 그 안에는 늘 근대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글ㅣ사진 · 박인하 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