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숨이 깃든 고려시대의 수덕사

한 달이 넘도록 굵은 빗줄기가 끊이지 않았던 이번 여름, 우리가 충청남도 예산 수덕사로 향하는 길은 반짝 해가 비쳤던 오전이었다. 대웅전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 오가와 데루요 씨를 만났다. 따뜻하고 순수한 웃음으로 우릴 반기는 그녀를 통해 천년고찰 수덕사의 숨과 향, 고운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수덕사는 조계종에서도 7교구 본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충청남도에 본사가 두 곳이 있는데 공주 마곡사와 이곳 예산 수덕사예요. 그만큼 그 가치와 명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수덕사의 대웅전은 지은 시기를 알 수 있는 목조건축물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특징이 있습니다.” 오가와 데루요 씨는 이렇게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한 자리에 이렇게 오래 있는 것 자체가 기적 같다고 말한다. 수덕사는 덕숭산에 자리를 잡고 있다.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는 수덕사의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 건축 양식을 지닌 고려시대의 건물이기 때문에 백제의 아름다운 형태미가 깊이 깃들어 있다. “결혼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살 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천천히 살펴보며 한국의 문화를 배워나갔어요. 수덕사 또한 집과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많이 들렀지요.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배흘림기둥과 사람 인人 모양을 하고 있는 맞배지붕이었어요.”

오가와 데루요 씨는 대웅전 앞에서 수덕사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해주다가, 문화재를 들여다볼 때 빠질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웅전의 아름다움이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은 대웅전 옆면으로, 기둥 위에 나비와 같이, 뭉게구름 같이 유려한 선을 가지고 있는 ‘화방’이다. 또한 특색 있는 것은 ‘우미량牛尾梁’인데 이것은 처마도리와 지붕보 사이에 건너지르는 수평 부재를 의미한다. 이름과 같이 소꼬리 모양처럼 살랑살랑 거리는 듯한 곡선이다. 오가와 데루요 씨는 그 옛날 뛰어난 건축술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준 이름 모를 목수에게 무한한 경외심을 품는다.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피워낸 문화재지킴이의 꽃

벌써 한국에서의 생활이 20년이나 흘렀다. 결혼을 함과 동시에 예산 땅을 밟았을 때, 모든 것이 낯선 나라였기에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 사람이었기에 역사적 문제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겪는 양국의 관계로선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오가와 데루요 씨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수덕사와 함께 덕숭산 자락 아래에 살다보니 이곳에 차차 남다른 애착이 생겨요. 처음에는 유명한 절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는데, 지속적으로 오다보니 이곳이 ‘우리 절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사적 제229호로 지정되어 있는 윤봉길 의사 유적지인 충의사에서 문화관광해설사를 시작해 지금에까지 이르렀어요.” 시대의 질곡 속에 뒤엉킨 우리이기에, 그녀의 상황이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수덕사를 사랑하고 한국문화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예산댁’이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즐거운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따라서 하나의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거예요. 저는 문화관광해설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문화재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과 가치에 대해서 전하고 있죠. 한번은 불교신자가 수덕사를 방문해 이곳저곳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절이 너무 아름답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셨거든요. 그때 뜨겁게 감동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일이 참 즐거워요. 다른 사람들의 문화재에 대한 시각을 들을 수 있고, 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단순히 통역을 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누구보다 한국문화와 문화재에 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오가와 데루요 씨. 낯선 타지 생활이 지속된 삶임에도 적극적인 성격과 끊임없이 공부해나가고자 하는 열의로 수덕사를 맑고 밝게 만드는 문화관광해설사로 자리하고 있다. 그녀는 지금 한국 문화재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공부하면 할수록 빠져든다는 우리 문화재 이야기. 말갛게 빛나는 여름 햇살 속에서 그녀의 웃음이 따뜻하게 번져나갔다.  

글 · 박세란 사진 · 최재만

출처:월간 문화재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