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오곡이 무르익고 친인척들을 만나 이야기 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한민족의 대명절 추석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본래 추석은 오곡의 풍성함에 감사 드리고 조상님께 차례 지내며 감사의 마음을 나눠야 한다. 함께 송편도 빚고 친지들과 안부 인사를 나누며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하고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을 풀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추석 특집 TV 프로그램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실. 뭔가 “이건 아닌데!” 싶기도 하지만 혼자 쓸쓸히 보내는 이들도 많고 TV 속 명절 모습처럼 모든 가정이 화기애애한 것은 아니니까. 이해한다.
그런데 연휴 때 TV를 켜면 한낮에도, 늦은 새벽에도 방송을 볼 수 있지만 정작 ‘볼 게 없다’고 느끼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나홀로 집에’의 악동 케빈은 성인식을 치른 지 10년은 됐고 미래에서 온 기계전사 터미네이터의 ‘아 윌 비 백’이란 대사와 치켜든 엄지손가락도 스무 번쯤은 본 듯하다. 그나마 새롭게 명절 단골 메뉴로 등극한 ‘해리포터’ 시리즈 정도가 명절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과연 올해 추석에는 뭘 보는 게 좋을지 미리 TV 프로그램 편성표를 확인해 봤다.
재탕삼탕 사골영화는 사절, 놓치기 아쉬운 추석특선영화
이끼
국산 만화로는 드물게 탄탄한 드라마트루기로 인기를 모은 ‘야후’의 윤태호 작가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 한 작품. 외딴 섬에서 병사한 아버지의 비밀을 풀고자 하는 주인공 해국과 그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경계가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깊어가고 작은 섬의 충격적인 비밀들이 서서히 풀린다.
박해일이 주인공 해국 역을 맡았고 극 중 비중이 큰 마을 이장 역은 정재영이 분장, 열연했다. 연기력이 뛰어난 박해일과 정재영의 심리묘사와 실타래처럼 얽힌 하나의 크나큰 사건을 풀어헤쳐 가는 과정 등 볼거리가 많아 개봉 당시 입소문을 탄 흥행작이다. 비교적 최신 개봉작이므로 못 본 이라면 놓치지 말 것을 권하나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인 탓에 온 가족이 한데 모여 감상하기에는 다소 무거운 내용이다.
마음이 2
‘에이트 빌로우’, ‘하치 이야기’, ‘개 같은 내인생(제목만 보고 오해하지 말자)’ 등 세계적으로 개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은 많다. 우리나라 작품으로는 정우성이 개 주인으로 등장한 ‘똥개’, 사고뭉치 주인 찾아 삼만리를 그린 ‘마음이’가 대표적인 견공무비랄까. 그 중 ‘동물영화=가족영화’라는 틀에 박힌 공식을 제법 감동적으로 마무리한 ‘마음이’의 속편 ‘마음이 2’가 추석날 아이와 부모 모두 시청할 수 있는 작품으로 방영된다.
1편의 아역스타 김향기, 유승호가 빠지고 새로운 스토리로 바뀐 채 마음이만 1편에 이어 출연하는 2편은 전작보다 코미디 성향이 강해진 탓에 감동은 적다. 어리숙한 다이아몬드 도둑과 이들을 피해 달아나는 마음이와 주인공 동욱의 가슴 짠한 동물사랑 스토리를 보고 나면 주말 ‘동물농장’을 경청하게 될 지도. 어리숙한 도둑 역이 딱 어울리는 성동일과 훈남 송중기의 요절복통은 추석 영화로 제격이다.
의형제
‘쉬리’가 남북 간 로맨스를, ‘공동경비구역 JSA’가 동포애를 그렸다면 ‘의형제’는 남북 형제 간 우애를 그린 작품이다. 물론 피는 안 섞인 의형제지만. ‘의형제’는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 스타 송강호와 꽃미남 영화배우 강동원이 출연해 개봉 전부터 주목을 끈 작품.
우연히 간첩-남파 공작원과 파면 당한 국정원 요원의 동상이몽 동거가 시작되고, 점차 서로에게 짙은 의리를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지만 남자의 우정과 왠지 모를 한민족의 안타까운 분단 현실이 잘 표현된 데다 적절한 액션이 결합돼 추석용 액션영화로 손색이 없다.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
소설가 감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은 드라마로 만들어져 익히 알려진 작품이다. 당시 드라마의 주인공 역을 김명민이 열연했는데 김탁환의 또 다른 소설인 ‘열녀문의 비밀’을 영화화 한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도 주인공을 맡았다. 조선명탐정 : 각시투구꽃의 비밀은 조선시대 정조 16년을 배경으로 공납비리를 숨기려는 관료들에 대한 조사를 명 받는 조선 제일의 명탐정의 활약을 그렸다.
조선시대를 위한 세트 위에 현대식 치장이 덧입혀진 화려한 의상과 영상 곳곳에 드러나는 미장센은 상당히 공 들인 티가 난다. 비주얼 외에도 영화 속 주요 캐릭터이자 조선시대의 팜므파탈로 변신한 한지민의 모습, 익살 넘치는 김명민과 오달수의 코믹 연기도 볼 만하다.
얼마 전 개봉한 ‘셜록홈즈’의 홈즈와 와트슨 같은 두 주연 배우의 콤비 플레이와 거대 기중기, 손전등 등 시대를 앞선 발명품들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발견하는 재미도 상당하다. 지나치게 폭력적이지 않고 지나치게 유치하지 않으며 화려한 볼거리와 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가는 주인공의 추리활극은 추석 영화로 딱 맞지 않을까.
전우치
‘의형제’에 이어 강동원이 주연을 맡은 또 다른 영화. 과거의 천방지축 도사가 그림 족자에 봉인됐다가 500년 만에 현대에 부활해 요괴를 잡고 세상을 구한다는 황당한 스토리지만 CG의 발달 덕분에 볼 만한 액션 판타지 영화로 완성됐다. ‘한국형 히어로 무비’를 표방하지만 ‘아라한 장풍대작전’에 살짝 못 미친다는 개인적인 평가와 상관 없이 강동원의 맹활약 덕분에 흥행에서는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타짜’, ‘추격자’로 스타덤에 오른 김윤석이 악한 도사 화담을 연기했고 명품 조연 유해진이 전우치의 개가 인간으로 둔갑한 모습을, 백윤식이 전우치의 스승 천관대사를 연기했다. 이 외에도 임수정, 염정아, 김효진의 모습도 화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인 남자보다는 아이들과 여성 동지들에게 더 환영 받을 것 같지만 추석과 어울리는 영화로 추천한다.
내사랑 내 곁에
강동원의 두 작품에 이어 김명민이 주연을 맡은 또 다른 영화. 인기 배우 하지원이 아내 지수를 연기했고 김명민은 몸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 병 환자를 연기했다. 이 작품 연기를 위해 실제 환자처럼 체중을 감량한 김명민의 실제 같은 연기는 굉장하다 못해 충격적이며, 그로 인해 몰입감이 한층 강해졌지만 진부한 소재로 눈물샘 자극에만 열을 올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죽자 사자 싸우는 액션 영화가 부담스럽다면 선선한 가을 날씨에 심금을 울리는 이 영화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어째 친척집에 가지 않고 남아 있는 싱글들에게 더 어울릴 것 같지만…
님은 먼곳에
1971년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가슴 뭉클한(?) 가족영화. 쌀쌀맞은 남편의 군 면회를 간 순이는 남편으로부터 냉대를 받는다. 따로 사랑하던 여자가 있던 남편 상길은 “니 내 사랑하니?”라는 물음만을 던지고 아무런 상의 없이 베트남전에 자원해 떠난다. 사랑하냐는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했던 70~80년대 가부장적 사회의 정략결혼의 희생자 순이는 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베트남 국군 위문공연단에 합류, 남편을 찾기 위한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가문과 가문이 배우자를 짝지어 주던 시절의 정략결혼, 그로 인한 가족 갈등이 멀고 먼 이국에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광기의 들판에서 서서히 자아가 무너져 가는 상길과 공연단 인기 가수 ‘써니’로 서서히 변신하며 유약했던 자신에게서 벗어난 순이의 만남은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수애의 열연이 돋보이는 2008년 작품.
추석을 위해 만들어진 추천! 특별 프로그램ㄴ
미녀의 비밀
12일 방영하는 '미녀의 비밀'은 외모 지상주의로 치닫고 있는 현실과 달리, 삶이 아름다운 미녀를 소개하고 그들의 삶과 인생역경을 조명한다. 손호영, 김태현, 김지선, 박지윤 등의 연예인 패널도 출연해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본다.
나는 트로트 가수다
(※ 이미지 출처 : imbc 화면)
일요일 저녁 시간 인기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의 명절 특집 버전. 제목 그대로 트로트 가수들이 경연을 벌일 예정이다. 김수희, 남진, 문희옥, 박현빈, 설운도, 장윤정, 태진아 등 트로트 계의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모여 경합을 벌인다 하니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이나 트로트 마니아들에게는 뜻 깊은 프로그램이 될 듯하다.
순위 선정 역시 '나는 가수다'와 동일하게 청중평가단 500명의 투표로 결정된다고 한다. 이날 인기에 따라 혹시 고정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9월 10일 밤 11시 10분, MBC에서 시청 가능.
한류 올림픽
(※ 이미지 출처 : SBS 연예뉴스 화면)
K-POP의 국제적 인기와 한국 드라마의 세계적인 히트로 ‘한류’는 해가 갈수록 그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이에 SBS는 한류 스타들의 춤, 노래, 개인기, 닮은 외모 등 4개 부문에 걸쳐 한류를 테마로 한 올림픽 대회를 방영한다.
이 대회에는 한국인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대만 등 총 6개국 22개 팀이 참가해 각자의 기량을 뽐낼 것이라고. 외국인이 표현하는 한류에 대해 궁금해진다. 특히 다문화 가족이 보기에 좋은 프로그램이지 않나 싶다. 9월 13일 저녁 6시 10분, SBS 방영.
박철순의 열혈구단
한국 야구사에 기억될 몇몇 스타 플레이어 중 가장 많은 이들이 꼽는 최고의 투수 박철순이 경북 경산시 공단의 리틀 야구단을 가르치고 있다. 그가 시골에서 리틀 야구단 감독을 하고 있는 사연이 잔잔히 펼쳐진다. 가난 때문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동네 아저씨 김영준 씨가 동네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서서히 변화되기 시작했다.
할 일 없이 몰려다니던 아이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스스로 노력하게 된 것. 그렇지만 ‘경산 동부 리틀 야구단’은 타 팀과의 친선경기에서 14 : 0으로 완패를 하고, 김영준 씨는 보다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박철순 선수를 떠올리게 된다. 그 박철순 선수의 지도 아래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강해져 가는 아이들의 모습은 ‘리멤버 타이탄’ 류의 영화보다 더욱 감동적으로 펼쳐질 듯하다.
무엇보다 영화가 아닌 실제이기 때문. 추억의 스타 플레이어를 만나는 재미 또한 특별할 듯하다. 9월 10일 밤 11시, KBS 1TV에서 시청할 수 있다.
이 밖에도 SBS '짝'의 연예인 버전인 '스타 애정촌', KBS가 12일 오후 7시 25분에 방영하는 '추석특집 코미디 한일전', SBS '스타커플 최강전' 등도 놓치기 아까운 특별 프로그램이다. 비록 올 추석은 주말을 포함한 4일 연휴지만 그 어느 때보다 참신한 특별 프로그램, 신작 영화들이 많아 명절의 즐거움을 더할 예정이다.
미디어잇 이상훈 기자 tearhunter@i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