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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후삼국 가운데 가장 광활한 영토를 통치했던 후고구려, DMZ에 갖힌 궁예의 궁궐터를 언...
 

 

<아래의 내용은 최근 기사가 아니며, 스크랩된 글입니다>

 

 

궁예 궁궐 모형도

 

 

역사 속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땅 위에는 많은 나라와 세력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면서 역사를 이어간다. 강원도는 1,100여 년 전 궁예가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아우르는 거대한 대동방국 건설의 야망을 품고 처음 도읍을 세웠던 곳이다. 이곳에서 왕건을 만났고 고려가 탄생했다.
그러나 고려의 마지막 왕이 유배되고 피살당한 곳 역시 강원도였다. 역사의 갈림길에서 영웅의 탄생을 지켜봤고, 사라져가는 왕조를 마지막으로 품은 땅. 강원도에서 고려의 시작과 끝을 되짚어본다.

 

 

 

 

철원 평화전망대에 오르면 태봉국 궁예도성터라는 모형도가 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 이야기만 가득할 줄 알았던 이곳에서 만난 뜻밖의 이야기. 철원은 궁예가 후삼국 중 하나인 후 고구려를 세우는 과정에서 국호를 태봉이라 하고 도읍을 정한 곳이다.
도성터는 휴전선이 놓인 비무장지대 안에 있어 출입할 수 없지만 평화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멀리서나마 그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도성의 자리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북을 뒤로 하고 비옥한 철원 평야를 바라보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경원선 철도 건설로 도성의 성벽이 파괴되고, 분단으로 비무장지대에 속하게 되면서 제대로 된 발굴이나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1942년의 조사 기록에 따르면 도성은 내성과 외성을 갖춘 이중성의 구조로 내성은 둘레 7.7킬로미터, 외성은 둘레 12.7킬로미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이루고자 했던 새로운 나라의 꿈은 현실이 되는 듯 했으나, 궁예는 정권을 쥐자 평정심을 잃고 횡포를 저질러 민심을 잃게 되었다. 결국 왕좌는 왕건에게 넘겨주게 되고 궁예는 피살당하고 말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지면서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철책선이 쳐지고 약 900평방킬로미터의 땅은 접근할 수 없는, 사라진 땅이 되었다. DMZ에 민간인통제구역까지 더해진 이곳은 일반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다. 사람들이 사라진 이 땅의 새로운 주인은‘자연’이 되었고, 수십 년 동안 생태계가 복원돼 원시 자연에 가까운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 철새들의 안식처

 

 

 

여름철의 토교저수지는 그저 거대한 물웅덩이에 불과해 보이지만, 겨울이 되면 이곳의 진짜 주인이 나타난다. 특히 동이틀 무렵이면 잠을 자던 두루미가 일제히 날아오르며 장관을 연출한다. 독수리와 청둥오리, 기러기 등의 새들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철원에 이처럼 철새가 많이 찾는 이유는 일 년 내내 일정 온도의 물이 뿜어져나오는 샘통을 중심으로 얼지 않고 마르지도 않는 자연 연못이 많은 데다가 사람들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다. 자연의 천적인 ‘인간’이 통제되어 원래 주인들이 마음놓고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철원의 동물들을 보다 자세하게 알기 위해 월정리역에 있는 철원 두루미관으로 향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박제된 두루미와 고라니, 독수리 등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생각보다 훨씬 거대한 두루미의 크기에 놀라고, 희고 고운 자태에 감동하게 된다. 이처럼 멸종 위기에 처해 쉽게 볼 수 없는 동물들을 실제 크기로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보호를 소홀히 하다 보면 이런 동물들을 전시관이나 사진첩 속에서만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명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 화산 활동이 만들어낸 비경

 

 

 

 

철원은 남한에서 제주도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화산 활동에 의해 형성된 현무암 지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제주와 달리 이곳의 현무암은 철분을 많이 함유하여 색이 붉고 무게도 훨씬 무거운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한탄강변에서는 수직으로 깎여 단면이 드러난 주상절리의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 송대소 주변에는 이러한 주상절리를 더욱 가깝게 볼 수 있도록 산책로와 자전거 코스를 조성해놓았다. 승일교에서 출발해, 고석정을 거쳐 송대소, 직탕폭포로 이어지는 한여울길은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 세월이 멈춘 듯한 오지 마을

 

 

 

 

비수구미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꽤나 험난하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타고 들어가야 작은 마을이 나온다. 단 네 가구만이 사는 오지 중의 오지 마을인 이곳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오면서부터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찾아 어려운 발걸음을 하기 시작했고 작은 민박집도 북적이게 됐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 험난한 길을 돌고 돌아 이곳에 오는 이유는 와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고즈넉함 때문이다. 마치 세상과 단절되어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과 자연이 만들어낸 천혜의 아름다움은 그 모든 수고로움을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 열목어가 사는 천연의 계곡과 숲

 

 

 

DMZ에서는 차갑고 가장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열목어도 볼 수 있다. 열목어 최대 서식지로 손꼽히는 두타연으로 가는길, 출입통제소에서 나눠주는 위치추적기를 목에 거니 이곳이 민간인통제구역이자 잠시 멈춘 전쟁의 한가운데라는 사실이 새삼 와 닿는다. 우거진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노라니 “지뢰 미확인 지역이기 때문에 정해진 길로만 다니고 물에도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설명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그렇게 사람들의 발길이 통제된 덕분에 열목어는 강물을 자유로이 헤엄칠 수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자연에 얼마나 해를 끼쳐왔는지 새삼 미안해진다.
안내소를 지나 우거진 숲 사이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두타연은 자연 그대로인 계곡 사이로 투명하게 흐르는 물이 신비로울 지경이다. 두타연은 굽이치던 물길에 의해 한 부분이 절단되면서 작은 폭포가 되고 그 아래 물웅덩이가 만들어진 지형으로, 그 일대에는 생태 탐방 코스가 조성되어 있다. 양구 전투위령비와 조각공원을 지나 징검다리도 건너고, 출렁다리도 건너보면 천혜의 자연 한가운데 있음을 만끽할 수 있다.

 

 


- 자연이 만든 신기한 땅

 

 

 

 

‘펀치볼마을’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마을을 찾아나선다. 역시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야 하지만 산 중턱에 시원하게 뚫린 터널이 마을로 가는 길을 훨씬 단축시켜준다. 마을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터널의 맞은편 을지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좋다.
을지전망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해안’이라는 원래 이름 대신에 왜 펀치볼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종군기자가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이룬 모습이 마치 오목한 화채그릇 같다고 해서 ‘펀치볼(Punch bowl)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소개한 데서 유래되었는데,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곳 펀치볼 마을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출입증을 받은 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오지에 속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하고, 독특한 마을의 모습을 보러 찾아오는 여행객들도 꽤 많다.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도 마련돼 있어 여유롭게 길을 따라 걸으며 마을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도 있다.

 

 

- 남북의 거물들이 선택한 호수

 

 

 

 

화진포에는 유명한 세 개의 별장이 있다. 북의 김일성과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과 부통령 이기붕의 별장이다.
그만큼 아름답고 자연을 벗해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는 뜻일것이다. 화진포는 동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자연 호수들 중에서 가장 큰데, 갈대밭이 넓게 자리하고 있어 철새들이 찾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특히 백조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고니가 호수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호수의 물결과 함께 마음도 평온해진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할수록 자연이 제 모습을 유지하고, 동물들도 활기차게 살아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DMZ에서 새삼 깨닫는다. 아름다운 자연과 신비를 간직한 생명들을 보면서 감탄하는 동시에, 인간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해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비극이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덕분에 지킬 수 있었던 자연을 앞으로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숙제가 남는 여행길이다.

 


- 함께 가보면 좋을 곳들

 

 

 

 

 

● 길에서 만난 이야기

 

 

 

 

<철원 풍천원 벌판을 바라보며〉

-과거·현대·미래 함축된 곳… 풍천원 벌판을 도읍지 삼아-

어찌 홍곡(鴻鵠)의 뜻을 연작(燕雀)이 알리오.

 

궁예가 철원 풍천원 벌판을 도읍지로 삼은 뜻을 보통의 우리가 짐작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임진강·한탄강 유역의 독특한 환경을 살펴보자. 이곳의 지리적인 특징은 서울∼원산간의 단층대인 추가령곡과 대륙충돌대라는 일정한 방향성을 가진 두 습곡단층대에 의해 결정된다. 너무도 예민한 접촉대다. 그러니 서로 다른 세단계의 화산암 분출이 시간의 폭을 두고 이 지층구조의 중심선 취약부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이에 더하여 임진강·한탄강을 중심으로 하는 인간의 역사 역시 뜨겁게 흘러왔다.

전곡을 중심으로 하는 구석기 중심의 선사벨트, 고구려·백제·신라와 북방계의 남하에 의해 조용할 날이 없었던 역사적 쟁패의 사례. 그리고 지금도 한국전쟁과 냉전, 분단의 기구한 사연이 두 강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가 농축돼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엄청난 에너지 충돌의 한 복판에 궁예의 태봉국도성이 위치한다. 도식적인 국도풍수의 이론은 이곳에서 통하지 않는다.

미완의 혁명가였던 궁예의 배포와 추종했던 싱크탱크 그룹의 청사진을 만족할 만한 공간이 철원벌의 풍천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용암벌판에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풍천원을 보면 국토의 중심이며 삼재 소통의 매개 공간인 오리산을 진산으로 하고, 청정했던 지장신앙의 메카인 보개산을 앞에 두었다.

궁예는 이곳에서 미륵 세상을 펼치려 했다. 철원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상을 도성의 품에 안아 반야용선을 띄우며 해가 지지 않는 불국토를 건설하려 했다. 이런 궁예의 웅대한 설계를 상상한다면 궁예가 마냥 폭군의 이미지요, 실패한 정치가요, 허황된 종교인라고 매도한다는 것은 너무 단견일 수 있다.

습곡단층대가 일으키는 땅의 봉합점이자 열에너지가 분출하는 중심부에 위치한 태봉국도성. 918년 6월인 바로 이맘때 숨어서 보리 이삭을 훔쳐 먹던 궁예의 최후와, 철책 안에 가둬진 태봉국도성의 침묵이 던져주는 화두가 더 없이 무겁기만 하다.

〈이우형|한국국방문화재硏 연구원〉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6291445381&code=900308#csidx365be414ed2cc939bca5f1b53f37e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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